“디지털 화폐 2.0을 향한 경쟁(race)이 시작됐다.”
최근 미국 씨티그룹은 보고서 ‘돈의 미래’에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연구에 착수했다고 밝힌 국가가 지난 2017년 65%에서 지난해 86%로 늘어났다”며 이렇게 평가했다. 현재 통용되는 ‘계좌 연동식’ 디지털 화폐 1.0과 달리 CBDC로 대표되는 디지털 화폐 2.0은 액면가를 가진 토큰을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 지갑에서 꺼내쓰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월가는 중국이 CBDC로 세력 확대를 꾀하고 미국이 이를 견제하며 양국 간 ‘신화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CBDC에 주목하고 있다.
19일(현지 시간) 미 경제 방송 CNBC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의 체탄 아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CBDC를 도입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CBDC 연구에 착수한 국가가 많아진 것은 물론 CBDC 실험에 나섰다고 밝힌 국가도 2019년 10%에서 지난해 14%로 늘었다.
CBDC와 관련해 중국이 가장 앞서고 있다. 중국은 2014년 CBDC 연구에 착수한 뒤 지난해 쑤저우와 선전·청두 등에서 CBDC 실험을 벌였다. 실험 당시 거래된 CBDC 규모만도 3억 달러(약 3,300억 원)가 넘는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CBDC를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넘어 이제 CBDC 분야에서 리더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중국 인민은행 산하 디지털화폐연구소의 무창춘 소장은 국제결제은행(BIS)에 CBDC의 유통 방법과 정보 교류, 감시 등에 대한 국제 규칙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의 CBDC인) 디지털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석했다.
사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화폐로, 실물 현금과 같다. 중국은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온라인 간편 결제 시스템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그럼에도 디지털 위안화가 주목받는 것은 편리함 때문이다. 가상 현금 거래 방식이어서 결제 시스템 간에 호환되지 않는 번거로움을 피해갈 수 있다. 알리바바 쇼핑몰 이용자는 위챗페이로 결제할 수 없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 관광객도 중국 내 계좌가 없어도 자국 화폐를 디지털 위안화로 환전해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관련 연구에 착수한 지 8년 만인 내년 공식 출범을 앞둔 디지털 위안화를 경계하는 이유다.
전날 중국 인민은행의 리보 부총재가 “디지털 위안화는 ‘국내용’이며 달러 패권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방어막을 쳤지만 중국은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디지털 위안화를 연계하는 상황이다. 실제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따른 중국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액이 15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이 중 25%가 위안화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위안화 블록’을 만든 뒤 디지털 위안화 국제화 실험을 이 블록에서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디지털 위안화가 ‘페트로 달러’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중국과 원유 300만 배럴을 위안화로 거래했다. 이는 세계 주요 석유 회사 중 원유를 달러가 아닌 위안으로 거래한 첫 사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이 원유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넘어 디지털 위안화까지 강제한다면 원유 업계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미국도 달라지고 있다. 2019년 말까지만 해도 CBDC 개발이 시급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최근에는 디지털 화폐 도입 논의에 고삐를 바짝 죄는 상황이다. 지난해 3월 미 의회에서 처음으로 관련 논의를 한 데 이어 올 2월에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디지털 화폐를 정책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여전히 공고한 달러 패권을 고려하면 우려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건전한 펀더멘털과 개방된 금융 시스템이 중요한데 중국은 아직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미국이 디지털 달러를 개발하기만 하면 다른 화폐보다 매우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