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관계로 지내던 여성을 살해한 30대 남성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범행 후 피해자의 계좌에서 수천만원을 빼내 쓰고, 18일 동안 시신을 방치한 채 경찰의 문자에 피해자인 척 답변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박상구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살인·절도·사기·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 모(38)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강씨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던 피해자 A(37)씨와 2017년 5월부터 교제하면서 '친척이 유명 영화감독인데 나를 경제적으로 도와준다고 했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강씨가 친척에게 경제적 도움을 약속받은 적은 없었다.
지난해 11월 27일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나는 업소 다니는 여자고, 너는 빚만 있는 남자다. 코로나 때문에 둘 다 일도 못하는데 니 뒷바라지까지 해야겠냐"고 말했다. 강씨는 이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 A씨를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씨의 범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강씨는 범행 후 A씨의 계좌에서 3,684만원을 인출해 개인 채무 변제 등에 썼다. 범행 다음 날에는 한 쇼핑몰에서 딸에게 줄 44만원짜리 장난감을 A씨의 체크카드로 결제했다. '조건 만남'을 한 여성에게 A씨의 돈을 주기도 했다.
강씨는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18일간 A씨의 사체를 자신의 집에 그대로 방치했다. 실종신고를 받고 A씨를 찾는 경찰에게 A씨인 것처럼 문자를 보내기도 했을 뿐 아니라,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우리 사회의 근본이 되는 가장 존엄한 가치이자 법이 수호하는 최고의 법익"이라며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결코 용서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연인 관계에 있었던 피해자로부터 경제적인 처지를 비난받자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살해한 후 자신의 범행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려고 하였다"며 "죄질이 좋지 않고 피해자의 유족과 지인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