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배기가스를 국수 면발 같은 이 분리막(fiber)에 통과시키면 이산화탄소(CO2)가 걸러져 나오죠. 대기업과 국내 강소기업이 협력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실천하는 모범 사례가 될 겁니다.”
여의도 면적 3분의 2(1.93㎢) 만한 롯데케미칼(011170) 여수 공장 정문을 지나 파이프라인 숲을 뚫고 가다 보면 ‘석유화학 공장의 심장’ 이라는 납사 크래킹(NC·Naphtha Cracking) 공정에 도달한다. 빌딩 4~5층 높이 NC 공정 설비 맨 아래 필로티 층 같은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면 컨테이너 5개가 눈에 들어온다. 롯데케미칼이 국내 화학업계 최초로 기체 분리막을 활용해 구축해 놓은 이산화탄소 포집·활용(CCU) 실증 설비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3월 이 설비를 설치했다. 기체 분리막을 활용해 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국내 유일 업체인 에어레인과 협업했다. 탄소 포집 기술은 있지만 상용화 경험이 없는 에어레인과 대규모 석유화학 공장을 돌리며 탄소 배출 저감이 절실한 롯데케미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지난 19일 여수공장에서 만난 박수성 롯데케미칼 생산본부장은 “상용화에 성공하면 연간 2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NC 공정은 원유를 정제해 얻은 납사를 재가공해 다운스트림(Downstream) 제품을 뽑아내는 석유화학 핵심 공정이다. 반도체·자동차·기계와 함께 우리나라 4대 수출 품목인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소재를 만들어 내는 ‘효자’ 공정이지만,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된다. 최근 ESG 경영이 확산하면서 석유화학 업계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문제에 맞닥뜨렸다. 이날 기자가 찾은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NC 공정 꼭대기에도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정사각형 모양 굴뚝(stack)에서 배기가스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롯데케미칼은 이 굴뚝에 배관을 연결해 배기가스 일부를 컨테이너 안 CCU 실증 설비에 주입되도록 했다. 분리막을 활용한 CCU 설비의 핵심은 폴리설폰(Poly Sulfone)이라는 소재로 된, 머리카락보다 약간 더 두꺼운 직경 0.3㎜ 분리막 가닥 제조·활용 기술이다. 직경 7~15㎝짜리 통(모듈) 안에 분리막 약 16만 가닥을 얼마나 균질하고 빽빽하게 넣는지가 중요하다. 국수 면발 같은 얇은 분리막 가닥의 표면을 통해 이산화탄소가 삐져나오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데이터 수집과 질소산화물(NOx) 영향평가 등을 거쳐 오는 2023년까지 상용화 설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후 대산·울산공장까지 설비를 확대해 궁극적으로 20만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활용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부는 순도를 높여 가전제품 내외장재 등으로 쓰이는 폴리카보네이트(PC) 원료로 쓰고, 나머지는 드라이아이스와 반도체 세정용 액화탄산가스 제조 업체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추진 중인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 중 하나인 경제구조의 저탄소화를 다름 아닌 석유화학 업계에서 실현하는 모범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 다각화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만큼 배출권 구매를 덜 해도 돼 환경 비용 절감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롯데케미칼은 한 해 수 십억원, 많게는 수 백원을 배출권 구매에 지출하고 있다.
//여수=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