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은 방역과 백신, 경제 정책에 있어 각자도생, 자력구제로 퇴행하는 듯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전보다 더욱 강력한 포퓰리즘이 발호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의 저명 저널리스트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신간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을 통해 이 흐름에 견제를 시도한다. 그는 미 시사주간지 네이션이 ‘차세대 헨리 키신저’로 지목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국제정치 자문가로 꼽힌다.
자카리아는 팬데믹 이후 열 가지 변화의 흐름과 그에 따른 기회를 이야기하는 이 책을 통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 40년 간 세계를 지배했던 자유시장경제는 역풍을 맞겠지만, 연결성과 협력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세계화의 흐름도 계속되리라고 본다. 글로벌 시장과 글로벌 상권이라는 근본적인 현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대에 모든 나라가 경제 성장을 멈추고 빗장을 꽁꽁 닫아걸어야 한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강한 반대를 표한다. 그는 책 말미에서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혼자서 행동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고 더 튼튼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협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허황한 꿈이 아니다. 그것은 상식”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팬데믹 이후에도 기존 질서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개선과 수정 없이는 이 질서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거듭 지적한다. 가령 그는 그간 정부를 ‘큰 정부’와 ‘작은 정부’라는 양적 기준에 따라 논했던 사고에서 벗어나 정부의 질적인 부분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을 예를 들며 “유능하고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며 신뢰받는 국가, 질 좋은 정부였다”고 평가한다. 반면 초기 대응에 실패했던 미국의 편협함을 비판하며 “이제 미국이 세계로부터 배워야 할 차례”라고 일갈한다.
또한 그는 팬데믹 국면에서 엘리트, 전문가를 향한 불신이 확산된 데 대해서 “우리는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 시대에 대안은 생각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권력에 취해 공감능력을 상실한 다수 전문가들을 향해서는 “성공과 사회적 지위가 모든 중요한 면에서 나를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는 신념이야말로 능력주의의 가장 큰 결함”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1만8,500원.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