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산어보의 정약전 ‘바다에 관심을 갖으라’ 말하다

김홍희 해양경찰청장

김홍희 해양경찰청장

어릴 적 위인전을 읽을 때부터 생긴 버릇이 있다. 그들이 내 나이 또래일 때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몇 살에 죽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더 알려진 정약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자산어보’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지난 1758년에 태어나 1816년 생을 마감했다. 42세부터 흑산도에서 16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그 유명한 ‘자산어보’를 사망하기 2년 전인 56세에 완성했다. 즉 정약전은 현재 내 나이에 자산어보를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양반으로 태어나 출세 가도를 달리던 천재가 정치적으로 변방에 내동댕이쳐지고 버려진 그 자리에서 어떻게 어민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살았는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정약전은 책을 쓰게 된 경위에서 흑산도 해중에는 어족이 극히 많으나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것은 적다고 했다. 마치 신세계에 온 듯 그곳의 평범한 어민들과 이야기하며 어패류를 잡고, 관찰 일지를 쓰고 분류하며 이름을 만들어 붙인 그는 진정한 해양생물학자였다.


요즘 해양 생물의 다양성이 줄고 있다. 바다에서 멸종 생물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열대 어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정부는 생존을 위협받거나 보호해야 할 가치가 높은 해양 생물 80종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일례로 국내 서식하는 바다거북 4종은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돼 있다.


푸른바다거북은 제주 해역에서 폐그물이나 폐로프에 감겨 있다가 해경에 의해 구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웃는 돌고래로 알려진 상괭이는 제주나 서해 바닷가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고래류는 상업적 포획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죽은 채 발견되면 작살 흔적 등 불법 포획 여부를 확인한다. 하지만 유통할 수는 있다. 반면 해양보호생물인 상괭이는 포획·보관·유통 등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밍크고래와 상괭이가 같이 죽은 채 발견되면 밍크고래는 상업적 이익을 위해 신고하고, 상괭이는 그대로 바다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버려진 상괭이가 제주 바다에서만 2018년 8건에서 2019년 44건으로 늘었다.


해경은 해양 환경 및 수산자원 보호뿐 아니라 선박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폐어구 발생 예방에 힘쓸 계획이다. 폐어구가 유실·투기되는 원인을 분석하고 어선 출입 검사 시 지도 점검 및 홍보 활동을 실시해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나갈 예정이다. 해양 쓰레기로 인해 해양 생물이 안전하지 못하면 국민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흑산도 바다에서 수많은 해양 생물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붙여주던 정약전이 다시 떠오른다. 그가 오늘날 어느 바닷가에서 자산어보를 쓴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훨씬 얇은 책이 됐을 것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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