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강조하던 김진욱, 검찰 향해 이젠 "모양새가 좀 아니다" [서초동 야단법석]

이어지는 검찰 공격...공수처 반격 나서나


위 사진은 갓 취임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1월 21일 공수처 과천 청사로 첫 출근을 하는 모습. 아래는 김 처장이 이달 7일 출근하는 모습. 법조계에선 김 처장이 임기 석달 사이 “인상에 변화가 있다”고 얘기한다. /연합뉴스

“협력을 잘하기로 했고, 분위기는 좋았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2월 8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만나고 나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후보자 신분이었던 1월 김 처장은 “검찰과 권한을 합리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공수처가 검찰을 견제하는 기구로서 역할을 하되 동시에 국가의 반부패수사 역량이 퇴보하지 않도록 협력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협력·협의’ 등의 단어들이 두 달 사이 ‘검찰에서 흘렸나’, ‘검찰이 압박하는 건가’ 등의 날 세운 표현들로 바뀌었다.


검찰 공격 계속되자…달라진 김진욱

김 처장은 이달 2일 검경과 사건 이첩 기준을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가 있은 다음 날, 공수처가 제시한 이첩 기준이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되자 “우리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는데 다른 곳에서 흘러나갔다”며 “검찰에서 나온 건가”라고 불쾌감을 내보였다.


또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공수처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 되고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김 처장은 “압박하는 것도 아니고 모양새가 좀 아니다”라고 검찰을 향해 말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면담으로 논란이 확산할 당시 보도자료를 허위로 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문상호 공수처 대변인에게 소환 통보를 하고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발끈한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김 처장이 두 달 사이 검찰과의 협력을 강조하다 180도 바뀌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지검장 면담 후부터 검찰의 공격이 계속되자 돌아섰다는 것이다. 김 처장의 한 지인은 “김 처장은 검사들이 의도적으로 공수처를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로 안다”며 “감정적으로도 검찰을 좋지 않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 처장이 지난 8일 ‘형법각론’ 책을 들고 출근하는 모습을 두고 언론에서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입을 빌려 여러 해석들을 내놓았을 때 김 처장은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할 일이 없나”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8일 ‘형법각론’ 책을 들고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CCTV 압수수색 방침에 공수처 수뇌부 ‘폭발’

김 처장과 공수처 수뇌부의 검찰을 향한 불만이 폭발한 것은 ‘CCTV 제출’ 갈등 때였다. 수원지검은 지난달 말 이 지검장의 면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 담긴 CCTV를 제출해달라고 공수처에 요청했었다. 수원지검은 이 지검장 면담 사실을 기록한 공수처 수사보고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고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공수처에서 일부 CCTV만 제출하자 검찰이 나머지 영상도 다 확보해야 한다며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을 잡았다.


공수처 수뇌부는 검찰의 압수수색 검토 사실이 알려지자 “강대강으로 나가야 한다”며 “물러서선 안 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반격할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여론도 공수처 내 강하게 있다. 영상 제출 하나로 수사기관끼리 압수수색을 거론한 것이 지나치다는 불만이다.


김 처장이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지난 12일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은 공수처 검사 13명이고 실무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초기 단계지만 곧 검찰 검사 혐의 사건들을 수사하고 기소하면 상황은 뒤집힐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초기에 복잡한 고위공직자 사건을 다루지 않고 간단한 검사의 혐의 사건 1~2개만 수사해도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 반격 나서나

공수처가 ‘반격 카드’를 무엇으로 할 지 관심사다. 먼저 이 지검장이 지난달 7일 김 처장과 면담을 하기 위해 공수처 관용차를 타고 이동한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것을 두고 진상 파악 및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언론이 CCTV를 처음 입수한 경로가 검찰이 아닌지를 보고 피의사실 공표 혐의 등이 적용되는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범죄첩보 수집을 위한 외부 활동을 하진 않지만 언론보도 등을 기반으로 한 인지수사는 할 수 있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검사 술접대 사건’을 처리한 서울남부지검 검사들이 고발된 사건도 카드로 거론된다. 공수처를 수사하는 수원지검을 직접 겨냥하기에 앞서 다른 검사 사건부터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한 시민단체는 “남부지검 수사팀이 술접대 사건에 연루된 검사들을 봐주기 위해 일부 검사만 기소했다”고 주장하고 공수처에 고발장을 냈다. 법조계 관계자는 “남부지검 수사팀의 결정이 적절했는지 법률 판단만 하면 되는 사건으로, 수사력이 특별히 요구되지 않는 사건”이라며 “품을 많이 안 들이고서도 ‘봐주기’ 논란이 번진 사건을 뒤집어 공수처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수처와 검찰이 이처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한다면 ‘권력기관 간 소모적 알력다툼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수처와 검찰이 서로 견제를 하되 협력적 분위기를 아예 없다시피 할 경우 나중에 고위공직자 부패 사건에 대한 협력이 필요할 때도 원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김 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이규원 검사의 허위공문서 작성 및 기밀유출 혐의 사건도 공수처에서 계속 쥐고 있는 점 역시 불과 한 달 전과는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성윤 지검장 사건 재이첩은 김 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매일 밤늦게까지 기록을 살펴보고 이첩 결정을 신속히 했다면, 검찰과의 갈등 국면으로 접어든 현재는 이규원 사건은 ‘천천히 할 것’이라는 말만 남기며 재이첩 결정을 미루고 있다”며 “최근의 적대적 분위기가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되는 사건 이첩 기준 등 협의에도 부정적 영향이 갈 수 있다. 검찰·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되는 국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 이첩 기준이 양 기관 감정이 이입된 상태서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와 검찰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닫게 되기 전 “두 기관이 갈등 구도를 만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싸우기만 하게 될 것이라 국민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우려가 현실화 하고 있는 셈이다.





/손구민 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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