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담] 美백신난에 이재용·푸틴도 찾는 '진짜 친구' 판독기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한미회담서 北 문제 대두...여론 "백신 집중하라"
'자국 우선주의' 바이든은 '反中' 백신동맹 시사
美 난색에 정의용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
丁 "수출 금지는 깡패", 文 "中 기부 높이 평가"
'이재용 특사론' 쏟아지고 러시아산도 검토 지시
화이자 계약 다급히 토요일 발표...美회담 주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자국 우선주의로 미국산 백신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우리 정부의 11월 집단면역 목표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집단면역은 완전한 경제 회복과도 직결된 문제인 만큼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이를 타개할 온갖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산 백신이 아직 없음에도 ‘백신 스와프’ 논의가 오가는가 하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을 사면해 ‘백신 특사’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도체 투자를 하는 대가로 미국산 백신을 당장 얻어 오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우리에게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오직 ‘반중(反中) 전선 참여’ 뿐이라는 점에서 한국이 현재 검토 중인 어떤 카드도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미중 간 균형외교를 추구하는 정부 내에서 현재까지 ‘중국 견제’를 언급하는 인사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다음달 하순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 조기 재개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관철을 백신 외교보다 조금 더 우선 순위에 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주도 행사에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문재인 대통령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 백신인 ‘스푸트니크V’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공식 지시했고, 당국은 올 하반기 화이자 백신 2,000만명분을 다급하게 추가 계약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연합뉴스

미일 “中·北 도전에 협력”…스가, 화이자 백신 구두 합의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대면 정상회담 직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에 관해서는 대량 파괴 무기 및 온갖 사정의 탄도미사일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한 약속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토대를 둔 의무에 따를 것을 강하게 요구하기로 일치했다”며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에서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지역의 타자에 대한 위압에 반대하기로 (의견이) 일치했다.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에 관해서도 미일 간에 일치했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같은 날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의 도전 과제와 동중국해, 남중국해, 북한 문제 대응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중국·북한 견제에 대해 미국과 의견을 맞춘 스가 총리는 정상회담 다음 날인 17일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백신 공급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정부는 해당 전화 통화로 화이자 백신 2,500만명분(2회 접종 기준 5,000만회분)을 오는 9월 말까지 추가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 역시 국가지도자가 정상회담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산 백신 확보에 나설 만큼 절박한 상황에 몰렸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일본은 현재 백신 1차 접종률이 1%대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인 나라다. 일본 내부에서는 스가 총리의 합의 소식을 두고 ‘구두 약속에 불과한 것 아니냐’ ‘바이든 대통령을 통하지 않고 총리가 직접 화이자 CEO에 읍소한 것은 굴욕’이라는 평가도 잇따랐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한미정상회담도 5월 하순 추진…‘北 문제 집중’ 예고한 文


미일정상회담 기간 바이든 대통령의 응대와 스가 총리가 보인 행보는 사실상 한미정상회담의 예고편으로 관측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로 만나기로 한 타국 정상이 다름 아닌 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은 애초 오는 6월 영국에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조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 조율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는 상황에서 미일정상회담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사되자 우리 정부도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나아가 스가 총리의 미국행에 맞춰 지난 15일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은 한미정상회담 일정을 앞당겨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한국과 북한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성명을 내놓을 것을 대비한 조치로 해석하기도 했다.


한미정상회담의 추진 성격 상 회담의 최대 화두는 백신보다는 역시 북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멈춰 있는 한반도 평화 시계를 다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에 직면했지만, 평화의 신념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며 "5월 한미정상회담도 계획돼 있다. 멈춰있는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리기 위한 노력과 함께 경제 협력, 코로나 대응, 백신 협력 등 양국 간 현안에 긴밀한 공조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모두발언 대부분을 대북 문제 설명에 할애하면서 백신은 짧게만 언급했다.


21일 공개된 16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도 “미국이 북한·기후변화를 포함한 기타 세계적인 관심 현안에 대해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며 대부분 대북 문제만 다뤘다. 백신 확보, 반도체 경쟁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국내에선 ‘이재용 특사론’까지…정의용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


반면 국민들 사이에서는 북한보다 백신 문제를 우선해 미국과 담판해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늘어났다. 한미정상회담 전까지 미국산 백신을 서둘러 확보할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이 정부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모더나 백신은 언제 들어오느냐”는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을 받고 “모더나는 4,000만 도즈(2,000만명분)를 계약했는데 상당 물량이 상반기에는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하반기에 들어오도록 돼 있다”고 답했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28일 문 대통령이 모더나의 스테판 반셀 CEO와 화상 통화를 나눈 뒤 올 2분기부터 2,000만명 분량의 백신을 공급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600만명분을 공급받기로 한 얀센 백신도 공급 차질 우려를 받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혈전 부작용’ 논란에 휩싸인 얀센 백신에도 ‘생산 중단’ 명령을 내리면서다. 이에 따라 국민들 사이에서는 상반기 중 1,200만 명의 예방 접종을 완료하겠다는 당국 계획이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한미 간 ‘백신 스와프’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과 진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바로 다음 날인 2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는 “미국 측에서 금년 여름까지 백신 접종을 마치려는 계획 때문에 여유분 물량이 없다고 설명했다”며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을 미국에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 장관이 방법이 없자 정(情)에 호소하는 외교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자 정·재계에서는 급기야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을 특사로 보내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CEO로서 이 부회장이 갖춘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와 존재감은 다른 전문경영인들과는 비교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재계에 따르면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법정구속 되기 직전까지 백신 특사로 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이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1심 재판이 22일 막 시작된 만큼 그에 대한 사면은 시기 상조라는 반론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방역당국은 22일 이에 대해 얀센 백신을 예정대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백신 수급과 관련된 논쟁은 소모적이고 생산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文 “中 백신 기부 높이 평가”…정세균 “美 수출 금지하면 깡패 짓”


이미 계약한 백신조차 수급 차질이 우려되자 문 대통령은 중국 주도 국제행사에서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발언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이 20일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 개막식에서 “코로나로 교역·투자 환경이 위축되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며 “당장에는 자국 경제를 지키는 담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세계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신 문제에 자국부터 챙기는 미국 정부를 겨냥한 비판으로 해석되는 대목이었다. 보아오포럼은 22일 개최된 미국 주도의 기후 화상 정상회의 직전 중국이 일종의 자기 세(勢)를 과시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기부와 같은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최근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력체)’가 중국의 백신 외교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중국 쪽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쿼드는 지난 3월 정상회의에서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내년까지 동남아시아 등에 10억 회분의 백신을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백신 수급 상황을 직접 챙긴 차기 대권 주자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2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미국이 백신 수출 금지를 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계약된 게 있는데 미국이 금수 조치를 취한다면 그걸 가로채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이게 가능하겠느냐. 이건 깡패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미국이 어떻게 그런 깡패 짓을 할 수 있겠느냐. 미국이 중간에 가로채면 우리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 전 총리는 1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도 “지금 세계적으로 백신이 부족한 상태 아니냐. (백신은) 인류가 함께 나눠야 하는 ‘공공재’다. 미국이나 유럽이 많이 확보하려는 게 바람직한 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美, ‘백신 동맹’ 의지…文, 러시아산도 검토 지시


한국의 혼란스러운 여론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이른바 ‘백신 동맹’에 대한 의지를 더 명확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 내 백신 접종이 2억회를 기록한 것을 자축하는 회견을 갖고 “지금 백신을 해외로 보내줄 것을 확신할 만큼 충분히 갖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특히 같은 날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과의 백신 스와프가 가능한 얘기냐”는 취재진 질문에 “멕시코·캐나다 등 인접국, 그리고 쿼드와의 조율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와 논의했다”고 답했다. 한국에 대해 물었는데 인접국과 쿼드 국가로 답을 한 것이다. 미국 외교가에서는 이 같은 정황을 바탕으로 한국이 반중 전선에 충실히 동참하는 일본·인도·호주보다도 더 늦게 백신을 공급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지원 대상을 ‘인접국→쿼드 참여국→동맹국’ 순으로 확정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다만 외교부는 미국 백신 여유분과 쿼드 가입과는 별개라며 확대 해석을 곧바로 경계했다.


문 대통령이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청와대 참모진에게 러시아산 백신인 ‘스푸트니크V’에 대한 도입 가능성을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스푸트니크V는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청와대에 공개 검증을 요청한 백신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 송영길 의원은 러시아 의회에 백신 협의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스푸트니크V는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승인을 받아 700만 명 이상이 접종한 것으로 파악되는 백신이다. 다만 접종국이 대부분 개발도상국이나 제3 세계 국가들이라 그 효능과 부작용이 대중들에게 뚜렷하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한때 정부가 중국 ‘시노백’ 백신 도입을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 /연합뉴스

다급한 정부, 토요일에 화이자 추가 계약 발표…한미정상회담 주목


이에 범정부 백신도입 태스크포스(TF)는 24일 미국 화이자와 백신 2,000만명분(4,000만회분)을 추가 계약했다는 소식을 긴급 발표했다. 휴일인 토요일에 예정되지 않은 브리핑을 연 것 자체가 이례적 조치로, 정부가 그만큼 다급한 상황에 몰렸다는 방증이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기존 7,900만명분(1억5,200만회분)을 포함해 총 9,900만명분(1억9,200만회분)의 백신을 확보하게 됐다.


다만 이번 물량은 하반기부터 공급이 시작되는 것으로 일단 파악됐다. TF는 “화이자 백신은 3월24일 첫 공급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매주 정기적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말했지만 하반기 월별 세부 공급 물량은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스가 총리의 화이자 계약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적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하는 조치가 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백신 수급 혼란 상황에서 당장 한미 간 백신 협상의 최대 분기점은 역시 한미정상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회담 성과에 따라 화이자 등 이미 계약을 맺은 미국산 백신 물량을 하반기에 하루라도 일찍, 더 풍부하게 공급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까지 ‘반중’에 초점을 두는 미국과 ‘북미·남북대화’에 방점을 찍은 한국이 대북 문제를 넘어 백신에 대한 합의까지 끌어낼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평가된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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