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학 동기의 자산 그래프’가 화제가 됐다. 대학 졸업 후 같은 시기 대기업에 입사한 동기 중 A는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불려간 반면 B는 전셋집을 전전하며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그랬던 B가 올해 들어 단숨에 A의 자산을 추월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가진 돈을 몽땅 투자했던 한 암호화폐가 급등한 덕분이다.
물론 그래프에 등장하는 두 대학 동기는 네티즌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최근 암호화폐 광풍을 풍자한 해당 게시물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빠르게 퍼지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암호화폐가 로또를 밀어내고 ‘인생 역전’의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투자자들도 불나방처럼 몰려들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4대 암호화폐거래소의 올해 1~3월 거래액은 1,486조 원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거래 규모의 4배를 넘어섰다. 이들 거래소의 일 평균 거래량은 코스피 하루 거래 규모의 두 배에 달할 정도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끈 것은 20~30대였다. 실제로 1분기 암호화폐 투자에 새로 뛰어든 10명 중 6명은 만 20~39세의 ‘2030’세대다. 투자금 마련을 위해 원룸 보증금을 빼거나 아르바이트도 포기한 채 종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20대 ‘코인폐인족’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또래 직장인이 코인 투자로 수십억 원을 벌고 당당히 사표를 냈다는 성공담은 부러움을 넘어 ‘벼락부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벼락거지는 되지 말자’며 투자를 부채질한다.
청년들이 높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암호화폐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적지 않은 청년들은 “한국 사회에서 암호화폐야말로 신분을 상승시켜줄 유일한 사다리”라고 말한다. 최악의 취업난과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이라는 숨 막히는 현실에서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은커녕 내 집 마련조차 어렵다는 좌절감에 빠져든다. ‘조국 사태’와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에 이어 LH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사회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청년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 연구팀의 설문조사에서 20대 응답자의 83.6%가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답한 이유다.
코인 광풍에 정부가 급기야 거래소 폐쇄 가능성까지 언급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왜 이런 위치에 내몰리게 됐을까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2030의 코인 투자 열풍을 ‘탐욕에 눈 먼 청년들의 한탕주의’로 치부하기 전에 ‘지금의 잘못된 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는 일침을 정부와 정치권은 새겨들여야 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누구보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바라는 나라다.
/김현상 기자 kim01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