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영향력 키우는 중·러, 사이버 테러 확산시키나

中 등 미래 기술표준화 선점 땐
해커 등 범죄집단 배후될 우려
민관·국제 공조 등 강화 절실


“미래의 번영과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핵심 기술들이 동맹국에 의해 제대로 통제되지 못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동맹국들은 이 부분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영국 도·감청 전문 정보기관인 정부통신본부(GCHQ)의 제러미 플레밍 국장은 최근 임페리얼 칼리지 빈센트 브리스코 연례 안보 강좌에서 사이버 테러를 경고했다. 그는 “세계 디지털 환경의 요소들이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며 “이를 방치할 경우 ‘무법적 가치’를 가진 자들이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영국 정보 당국 수장의 이런 언급은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나 단체에 기술 영향력을 넘겨줄 경우 우리 미래가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이버 테러는 이제 단순히 돈을 노린 금융기관 해킹에 국한되지 않는다. 첨단 기술 등 지식재산권을 빼가기 위한 시도에서부터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겨냥한 테러, 원자력발전소 등 에너지 시설에 대한 테러, 특정 기업을 아노미 상태로 만들어 경제를 넘어 국가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시도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이버 범죄는 이미 기업 생존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6월 대대적 해킹으로 미국 등 11개국 공장이 일시에 멈춰 섰던 일본 자동차 업체 혼다가 대표적이다. 당시 악성 코드의 일종인 랜섬웨어가 내부 서버를 강타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천문학적인 재산상 피해, 수백 만에 이르는 고객 정보 유출 등으로 혼다는 몸살을 앓았다.


각국 정부도 사이버 테러를 당도한 최대 위협 요인으로 꼽고 있을 만큼 긴장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최근 미국 CBS방송 인터뷰를 통해 “세상이 바뀐 만큼 리스크도 변화하고 있다”며 “모든 주요 대형 기관들에 사이버 공격이 매일 발생하고 있을 정도”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사이버 테러를 일으키는 위협 요인은 날로 진화하는데 이를 제어하는 수단은 아직 체계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플레밍 국장은 “중국 등 적성국들이 미래 기술의 표준화 작업을 선점해 세계 경제에서 기술 영향력을 갈수록 키우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중국·러시아 등이 범죄 집단의 배후가 되거나 이런 국가가 직접 사이버 테러에 가담하는 데 손쉬운 환경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화웨이가 만든 5세대(5G) 장비에 대해 서구권 국가들이 배제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각국 간 공조도 강화되는 추세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미일 양국은 일본 전자 상거래 업체 라쿠텐의 정보 유출 우려와 관련해 공동으로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텐센트의 자회사가 라쿠텐의 지분 3.7%를 인수하면서 일본 사용자 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영국 검찰은 사기, 경제 범죄, 사이버 범죄의 기소권을 한 지붕 아래 둘 수 있도록 오는 2026년 런던에 경제범죄청을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이버 범죄 적발과 기소 가능성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미국조차 고작 0.05%(세계경제포럼 글로벌리스크 보고서)에 불과하다. 사이버 테러가 실제 발생했는지도 체크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사이버 테러의 파급력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민관 공조, 각국 간 공조 등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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