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와 모범택시 시대에 묻는 근원적 질문 '정의란…'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정의의 사람들'
카뮈 원작에 안중근·이슬람·미얀마까지
시공 초월한 '정의의 현장' 담아내 각색
버거운 구성 아쉽지만 곱씹어볼 질문 의미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리는 마피아(드라마 ‘빈센조’)와 억울한 사람을 위해 사적 복수를 감행하는 택시 기사(드라마 ‘모범 택시’)에 환호하는 시대다. “법의 심판? 누구 좋으라고” 라는 빈센조 속 대사처럼 법의 이름으로는 사람이든 시스템이든 ‘빌런’을 처단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정의란 무엇일까. 다양한 이해관계와 그 안의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 불변의 정의가 존재하는 것일까. 서울시극단의 올해 첫 정기 공연 ‘정의의 사람들’이 이 묵직한 질문을 관객에 던진다.




정의의 사람들은 프랑스 문호 알베르 카뮈의 동명 희곡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원작은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05년 세르게이 대공 폭탄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정의와 인간애 사이에서 고뇌하고 행동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황제의 숙부인 세르게이 대공을 암살한 칼리아예프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한(것이라고 믿은)’ 행동이 살인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는지 고찰한다. 서울시극단은 원작에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더했다. ‘세상을 바꾸려고 한 혁명가’를 자처하며 자신의 테러를 정의라고 믿던 칼리아예프는 감옥에서 정체 불명의 사내와 마주하며 흔들린다. 이 혼란의 과정에서 안중근·윤봉길 의사 의거부터 전태일과 노동 인권,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 태극기 부대와 촛불 시위, 페미니즘과 최근 미얀마 사태에 이르기까지 정의를 둘러싼 사건들이 소환된다. 수많은 시공에서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묻는다. 지금 여기의 정의는 무엇이냐고. 그때의 정의가 지금도 정의라고 할 수 있느냐고.




너무 많은 것을 담은 이야기를 소화하기 쉽지는 않다. 하나 만으로도 버거운 사건들이 불쑥불쑥 개입하는 탓에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파편처럼 등장한 사건들은 마지막에 하나로 뒤엉켜 ‘목소리만 있고 귀는 닫아버린 정의’로 형상화되는데, 이들을 ‘정의’라는 개념 아래 뭉뚱그릴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와 이념이 충돌하고 악당보다 더 독한 정의의 사도(?)에 환호하는 오늘날, 작품이 던진 근원적인 질문은 곱씹어볼 만하다. 5월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사진=서울시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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