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고 재치 있는 '윤여정 어록'…"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

품위·유머 갖춘 솔직·직설적 화법에 젊은층 환호
해외시상식 수상소감에서도 돋보인 대담한 언변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74)이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배우 윤여정(74)은 연기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재치 넘치는 언변으로 세계를 사로잡았다. 윤여정은 솔직하다 못해 직설적인 이른바 '돌직구' 화법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자신을 낮추지 않고, 할 말은 하지만 품위를 지키는 그의 화법에 젊은 층은 더 환호한다.


56년차 배우이자 70대 중반 어른이지만 그는 괜한 무게를 잡지 않는다. 자신을 "진지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윤여정은 양념을 곁들이듯 적절한 유머로 분위기를 띄운다. 해외 각종 시상식에서는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브로큰 잉글리시'로 관중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고, 예능과 인터뷰에서는 삶의 경험을 녹여낸 담백한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다.


"고상한 체하는 영국인에게 인정받아"…폭소 끌어낸 수상 소감



배우 윤여정이 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비대면으로 개최된 제74회 영국 아카데미(BAFTA)상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화상을 통해 소감을 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윤여정은 그동안 '미나리'로 거쳐온 수많은 시상식에서 농담 섞인 솔직한 수상 소감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윤여정은 판에 박힌 뻔한 소감은 내놓지 않았다. '미나리'가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사실 이 영화 안 하고 싶었다. 고생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라며 쉽지 않은 독립영화 현장을 드러냈고, 관객들은 웃음으로 공감을 표했다.


한국 배우로서는 최초로 수상한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고상한 체한다(snobbish)'고 알려진 영국인들이 좋은 배우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고 영광"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정곡을 찔린 영국인들은 이 대담한 소감에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을 앞두고 이뤄진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아들이 아시안 증오범죄 때문에 시상식에 참석하러 미국에 가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전하며 "끔찍한 일"이라고 직언하기도 했다.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열리는 크고 작은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수상할 때나 아카데미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도 한결같이 담백한 소감을 내놓았다. 지난 2월 '미나리'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20개 넘는 상을 받은 소감을 묻자 "상패는 하나밖에 못 받아서 실감을 못 하고 있다. 그냥 나라가 넓으니까 상이 많구나 하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최종 후보로 지명됐을 때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애플TV 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 촬영을 마치고 귀국했을 시점이었다. 윤여정은 자가격리 상황을 전하며 "모든 사람이 (축하하기 위해) 이곳에 오고 싶겠지만, 여기에 올 방법은 없다"며 샴페인 한잔으로 혼자 축하주를 마셨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는 오스카 수상 가능성과 관련된 질문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것도 모르니 묻지 말라"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의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른이라고 꼭 배울 게 있느냐"…청춘이 공감하는 시크한 어른


윤여정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인생에 관한 담백한 고찰과 위트가 돋보이는 말을 여럿 남겼다. 특히 2014년 tvN '꽃보다 누나'를 계기로 스타 PD 나영석 사단의 예능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 그가 프로그램에서 남긴 말들은 '윤여정 어록'으로 불린다. 연기 인생을 이야기할 때 그는 늘 솔직했다. 2009년 MBC '무릎팍도사'에 나와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하더라. 그래서 예술은 잔인하다.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한다"고 한 것은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배우 윤여정의 캐릭터는 확고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호오도 극명했다. 70대의 나이에 예능 프로그램을 접수한 그에게 요즘 젊은 세대는 환호를 보내지만, '이혼한 여배우'에 대한 대중의 편견이 훨씬 확고했을 때는 비호감 여론이 훨씬 강했다. 윤여정은 "어떻게 만인이 나를 좋아해. 일찍 죽어요, 그럼."(2013년 SBS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 "'윤여정은 이혼녀야. TV에 나와선 안 돼' 그땐 사람들이 그랬어요. 근데 지금 저를 아주 좋아해 주세요. 이상하죠. 그게 인간이에요."(2021년 뉴욕타임스 인터뷰)라고 받아친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사진은 영화 '여배우들'에 나온 윤여정. /연합뉴스

'미나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후에도 윤여정은 한결같았다. 해외 매체들이 윤여정을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라고 소개하는 것에 대해 그는 "칭찬인 건 알지만 일종의 스트레스"라며 "메릴 스트리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이고, 저는 단지 한국의 윤여정이다. 모든 사람은 다르고, 나는 나 자신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 개인으로서 늙어가며 느끼는 인생의 덧없음이나 회한 등에 대해서도 그대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관찰 예능에서 그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내가 알았으면 이렇게 안 하지."(tvN '꽃보다 누나'),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그런데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아."(2017년 tvN '현장 토크쇼 택시') 삶의 유한함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KBS 연기대상 MC로 나섰던 그는 "난 못생기지 않았고 시크한데도 못생겼다는 이유로 KBS에서 수십 년 드라마를 했지만 상 한 번 못 탔다"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또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지만 다 아프고 다 아쉬워. 난 웃고 살기로 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헛소리를 좋아해요."(2014년 tvN '꽃보다 누나')라고도 했다.



4일(현지시간) 비대면 화상 방식으로 진행된 제27회 미국배우조합상(SAG)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tvN 예능 '윤스테이'에서는 외국인 손님이 오징어먹물 요리를 보고 '우리를 독살하려는 건 아니냐'고 농담하자 "Not tonight, maybe tomorrow"(오늘 밤은 아니지만 내일은 또 몰라요)라고 응수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자신에게 동선을 낱낱이 보고하는 최우식을 향해서는 "왜 은밀하게 얘기해? 나 쟤랑 사귀니?"라고 대꾸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어른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준 그는 젊은 층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도 많이 남겼다.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이 있잖아요.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어요.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되죠."(2017년 tvN '윤식당' 시즌1)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면 된다. 어른이라고 해서 꼭 배울 게 있느냐?"(2018년 SBS '집사부일체'), "우월감하고 열등의식이 같이 가는 거거든요. 그거 하지 마."(2021년 유튜브 예능 '문명특급')


/박신원 인턴기자 shin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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