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술사업화도 '종잣돈' 있어야 가능하죠"

'대학 기부' 팔 걷어붙인 정진택 고려대 총장
교원 창업 활성화 위해 재원 필요
오너 상속 주식 대학 신탁할 때
피상속인에 대한 경영권 유지하고
배당금 R&D에 쓰는 제도 마련을

정진택 고려대 총장이 26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총장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대학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기술이전과 교원 창업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부금 모집을 통한 종잣돈 마련이 시급합니다.”


정진택(61·사진) 고려대 총장은 26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총장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등록금 동결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에 필요한 것은 기술 사업화”라며 이같이 말했다.


고려대 기계공학과에서 학·석사를 하고 미국 미네소타대 기계공학 박사를 취득한 그는 모교에 부임해 공대 학장과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을 거쳐 지난 2019년 개교 114년 만에 처음으로 공대 출신 총장이 됐으며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을 겸하고 있다.


정 총장은 최근 연구개발(R&D) 역량을 기반으로 대학에서 우수 특허를 대거 확보한 뒤 기업에 기술이전하거나 교원 창업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교육 혁신과 연구 역량 확충 못지않게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기술 사업화”라며 “고령화 시대 바이오 대국을 만들기 위한 의대와 공대의 융합 연구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과 에너지·신소재 연구 등 국가 경제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대학기술지주회사는 물론 의료원에 기술지주회사를 별도로 두고 연구 중심 병원을 안암병원과 구로병원 두 곳이나 운영하는 곳은 고려대가 유일하다”며 “이제는 의대 교원들이 진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바이오헬스 분야의 사업화를 꾀하는 데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총장의 고민은 도전적인 연구와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한 재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는 “등록금이 13년째 동결돼 대학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우수 신임 교원들의 정착 연구비나 학제 간 융합 연구, 기초 학문 지원, 국제 연구 협력, 노벨상 연구 지원 등에 종잣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원들의 기술 기반 창업 활성화를 위해 대학기술지주회사를 통해 200억 원 이상의 투자 종잣돈을 마련했으나 아직 크게 부족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기업에 기술이전하고 교원 창업이 활성화돼야 청년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도 만들고, 세금도 내고, 대학 재정도 확충할 수 있다”며 “다만 아직은 중국 칭화대나 싱가포르 난양공대, 일본 도쿄대 등에 비해 투자 재원이 크게 부족해 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정 총장이 기부금 모금에 발벗고 나서는 것도 투자 재원 마련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그동안 고려대에는 힘들게 과일 장사를 해 모은 4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한 김영석·양영애 씨 부부를 비롯해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200억여 원을 내놓은 고(故) 정운오 회장 자제들, 110억 원의 장학 기금을 출연한 이용희 태광사 회장, 노벨상 가능 교원들을 위한 ‘인성(仁星)스타연구자상’에 50억 원을 제공한 유휘성 교우, ‘육종연구소’ 기금으로 30억 원을 쓰도록 한 김재철 변호사 등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정 총장은 “기부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부금에 대한 정부의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며 “중견 기업 오너 등이 상속 주식을 대학에 신탁할 경우 피상속인은 경영권을 유지하고 배당금은 R&D에 쓰도록 하는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그는 고려대가 사회과학 분야나 문과보다 이공계에서 상대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6년 전 한 판사 출신 교육부 장관이 당시 총장에게 ‘고려대에도 공대가 있느냐’는 질문을 한 적도 있다”며 “사실 이공계와 의대가 R&D와 기술 사업화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국가 성장 동력 확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참 안타깝다”고 전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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