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 칼럼] 완전한 디커플링이 불가능한 미중 반도체 전쟁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
미중, 韓 향해 회유·압박나설 가능성
대체시장 찾기도 힘든 韓 고민 깊어져
획기적 투자·과감한 지원·규제철폐로
핵심기술 확보해야 시장 이길수 있어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중 양국의 디지털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는 ‘국가안보 전략 잠정 지침’에 미래 과학기술이 미국의 국익에 가져올 위험과 기회를 분명히 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글로벌 반도체 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 모아 미국으로의 반도체 투자를 종용했으며, 종합 반도체 기업(IDM)인 인텔도 국가의 전폭적 지원 속에서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하기로 했다. 중국도 ‘제14차 5개년 규획(2021~2025년)’에서 반도체를 핵심 과학기술 연구 프로젝트에 포함시켰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인체의 심장’에 비유한 반도체에 천문학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시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에 반도체 단과대학을 설립하는 등 5년 내 50만 명의 반도체 전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미국이) 목을 조르는 현안을 푸는 데 힘을 기울이고 다시는 목이 조이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반도체가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이 된 이유는 직접적으로는 반도체 공급 부족이지만 대표적 민군 겸용 기술이라는 점에서 미중 간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반도체의 모든 영역에서 기술적 우위에 있고, 미국의 동맹국과 우호국들이 파운드리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새로운 규범과 표준을 제정할 수도 있다. 더구나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정부가 대중국 정책에서 성과를 거둬야 하는 국내 정치공학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수입의 80%에 달하는 세계 시장의 ‘큰손’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기준 반도체 자급률은 15%에 불과했다. 반도체 산업의 기초와 투입·인재·혁신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은 5G, 양자 컴퓨터, 빅데이터를 통해 어렵게 확보한 게임 체인저의 기회를 잃게 되고 이는 새로운 집권 플랜을 짜는 시진핑 체제의 리더십에도 손상을 입힐 것이다.


문제는 양국의 반도체 전쟁이 ‘기술과 시장’의 싸움이며, 무기화된 상호 의존 속에서 미국이 완승하기 어렵고 이긴다 해도 내상이 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기술 우위, 공급망 재편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 속도를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이자 미국 반도체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을 잃으면 미국 IT 기업들도 약 1,00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이라는 치명적 부메랑 효과에 직면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강력한 대중 압박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대중국 직접투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도 중국 상하이에 공장을 증설했다. 여기에 반도체 기술의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중국이 반도체 자급률을 높여 엄청난 수입 대체효과를 거둘 경우 시장의 판도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우리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기술과 장비를 막을 태세고, 중국도 시안과 우시 등에 진출한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에 대한 회유와 압박을 병행할 조짐이다. 기술이 시장을 확실하게 이길 수 있고, 대만의 TSMC와 같이 중국 대신 구미 거래선을 확보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러나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고, 단기적으로 시장 대체도 간단치 않다. 근본적으로 미중 반도체의 완전한 디커플링이 불가능하며 반중 반도체 동맹에 참여한 국가들에 미국이 보상 체계를 제공해줄 여력도, 의지도 없는 구조이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공급은 전 세계 70%에 달한다. 장비와 기술 없이 반도체를 만들 수 없지만 메모리가 없어도 반도체는 만들 수 없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눌러주는 사이 이를 지렛대로 삼아 기업의 획기적 투자, 국가의 과감한 지원과 규제 철폐, 인재 양성을 통해 반도체의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지금 여기서 미중 간 선택을 강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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