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녀의 성(姓)을 부부 합의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1인 가구 비중이 40%에 육박하는 등 사회 변화에 따라 혈연·혼인 중심의 법적 가족 개념을 비혼·동거까지 확대하는 논의도 본격화한다.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 한부모 등 소외 계층을 포용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가 비혼·동거를 조장한다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정책 추진 과정에서 관계 부처 간은 물론 여성·종교계 사이에서도 충돌이 예상된다.
여성가족부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했다. 가족 정책 주무 부처인 여가부가 건강가정기본법에 근거해 부처 간 조율을 거쳐 수립하는 5개년 계획이다.
정부는 우선 자녀가 성(姓)을 결정할 때 아버지 성을 우선적으로 따르는 ‘부성 우선 원칙’ 폐지 검토에 나선다.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고 정한 민법 조항을 ‘부부 합의 결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또 혼인·혈연 중심인 가족 개념에 비혼·동거도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도 논의한다. 현재 민법은 배우자·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등을, 건강가정기본법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를 가족으로 정의하고 있다.
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을 계기로 비혼 출산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된다. 여가부는 보조생식술을 이용한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인하고 관련 법윤리·의학·문화적 측면에서 쟁점을 논의하기로 했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포스트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시대에 가족의 개인화·다양화·계층화가 심해질 것”이라며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인 가구 급증, 젠더 갈등 등 사회 변화에 따라 가족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가구 가운데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49.2%로 치솟았다. 반면 4인 이상 세대 비율은 20.0%에 그쳤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가족 개념이 뒤바뀔 경우 상속 시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등의 우려에 따라 부처 간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호주제에 이어 혈연·혼인 중심 가족 정의까지 없어지면 최소한의 법적 연결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대법원 판례에서 이미 일부 동거 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한 데다 한부모·다문화 가정을 다룬 개별법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법 개정 실익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반대 입장을 보이는 종교계를 설득해야 하는 점도 여가부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21일 담화문에서 “여가부가 추진하는 비혼·동거·사실혼의 ‘법적 가족 범위 확대 정책’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가치로 여겨졌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김창영 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