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서울 중·고교 입학생들에게 지급된 입학준비금 사용 문제로 학생·학부모가 혼란을 겪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입학준비금 사용처를 학생 교복·의류, 스마트기기로 제한했는데 막상 안내된 이용처를 방문하면 학생복과 관계없는 의류업체이거나 입학준비금을 받지 않는 업체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육청이 무상교복 정책을 입학준비금으로 포장하려다 교육현장 혼란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청은 애초 제로페이 가맹점인 소상공인 업체에서만 입학준비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바꿔 지난달말부터 백화점, 아울렛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처를 확대했다.
교육청은 올해부터 중·고교 신입생들에게 입학준비금 30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교육청·서울시·25개 자치구가 각각 5대 3대 2 비율로 재정을 부담해 13만6,700명에게 416억원을 지원한다. 학생 또는 학부모가 입학준비금을 받으면 학교에서 교복 공동구매를 진행할 때 사용할 수 있고 구매 후 남은 비용은 제로페이(서울시가 소상공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만든 민관 합작 간편결제 서비스) 포인트로 지급된다. 교복을 안 사면 30만원 전액이 지급된다. 교육청이 발행한 포인트는 교복·체육복·일상복 등 의류와 원격수업용 스마트기기 구매에만 쓸 수 있고, 2월말~3월초 받은 입학준비금은 3개월 안에 소진하지 않으면 회수된다.
애초 교육청이 제로페이가 소상공인 지원 제도라는 이유로 입학준비금을 영세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도록 제한했다가 학생과 학부모 불만에 부딪혔다. 교복을 사지 않은 학생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어 사복 구매 외에 선택지가 없었는데 교육청과 서울시가 ‘지맵’ 앱(제로페이 가맹점을 소개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안내한 사용처들은 숙녀복 등 성인용 의류 판매장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방문시 허탕을 치거나 학생복을 사기 위해 한시간 거리 매장을 방문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제로페이 가맹점인데 제로페이 결제가 되지 않는 점포들도 다수 존재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학부모는 “입학준비금 사용이 가능한 의류매장을 검색하면 아이 옷은 없고 보세(브랜드가 없는 제품) 옷만 판다”며 “학생 쓰라고 주는 입학준비금이면 서적, 문구를 구매하라고 해야지 왜 어른 옷 매장에서 쓰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민원이 계속되자 교육청은 지난달말에서야 사용처를 일부 백화점·아울렛으로 확대했다.
이러한 혼란은 교육청이 무상교복 정책을 입학준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미 예견됐다. 원래 교육청은 무상 급식, 무상 교육에 이어 무상 교복까지 추진하려 했으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탈교복’ 기조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입학준비금을 도입했다. 하지만 서울 학생 90% 이상이 교복을 입는 상황에서 입학준비금은 교복지원금과 다르지 않다는 우려가 컸고, 교육청이 이를 의식해 구매 대상에 사복·스마트기기를 끼워넣었지만 오락가락 정책에 혼란만 키웠다. 학생·학부모가 사용처를 못 찾아 개학 전 교복 구매에 썼던 카드결제를 취소한 뒤 재결제하거나 하복을 미리 구매하는 등 입학준비금 제도는 무상교복 정책과 다를 바 없게 됐다.
교육청이 소상공인을 살린다는 취지까지 뒤집어가며 구매처를 확대한 데는 회수금 논란에 대한 우려도 작용했다. 3개월 내 못 쓴 입학준비금은 회수되는데 회수금이 크면 내년도 예산 확보 명분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입학준비금을 도서, 문구 구매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회수금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교육청은 내년부터 입학준비금을 도서, 문구 구매에도 쓸 수 있도록 개선한다는 방침이지만 기존에 정부가 저소득층 학생에게 지급해 온 교육급여와 중복되기 때문에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교육청이 올해 입학준비금 구매 물품에 도서, 문구를 포함시키지 못한 것도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의 반대 때문이었다. 사회보장위원회 관계자는 “중위소득 50% 이하 가정에 교육급여가 지원되기 때문에 입학준비금을 도서, 문구로 확대하면 중복 지원이 된다”며 “교육청이 도서 등으로 이용을 확대할 경우 지원금이 중복으로 지급되지 않도록 설계됐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창영 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