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CEO 징계에만 집중하면 모험자본 공급 위축"

[자본硏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세미나]
인적 제재에서 금전 제재 중심 전환 필요
CEO 징계 시 금융사 기능 저해 가능성
효과적 처벌·유인책 위해 책임 명확성 높여야
"장기적으로 자율규제로 가야" 덧붙이기도


금융사들이 자율적으로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면 ‘인적 제재’에서 ‘금전 제재’ 중심으로 징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금융 당국이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을 근거로 라임·옵티머스 펀드와 해외금리연계파생결합펀드(DLF)를 판매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징계해왔던 만큼 이 같은 제안이 향후 정책에 반영될지 주목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금융회사의 내부 통제: 쟁점과 전망’ 세미나를 28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이효섭 자본연 선임연구위원은 “효율적인 내부 통제 기준 제도를 마련하려면 인적 제재 중심에서 행정 과징금 강화 등 금전 제재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 당국 입장에선 인적 제재를 사회적 이슈로 활용할 수 있어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제재 방법일 수 있으나 이를 고집하면 금융사 CEO는 자원을 보다 안전한 곳에만 발휘할 유인이 있다”며 “그러면 모험자본 공급 등 금융회사의 근본적인 기능 발전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자본연 연구진이 이 같은 제언을 내놓은 것은 사실상 금융 당국의 ‘인적 제재’ 방식이 금융사들의 자율적인 내부 통제 기준 마련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금감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제24조에 규정된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 미흡을 이유로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전 대신증권 대표)과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등 라임·옵티머스 펀드 판매사 CEO에게 중징계를 내린 바 있다.


주요 금융사들이 사모펀드 등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내부 통제 기준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라 CEO를 제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업계에선 “지배구조법상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는 선언적 의미”라며 “CEO까지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자본연 연구진은 CEO 등에 대한 감독자 책임이 보다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만 의무가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행정 제재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부 통제 기준 위반에 대한 책임 부여는 물론이고 준수 시 인센티브 부과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달리 한국은 행정 규제 위반을 통해 감독자 책임을 부과하기 어렵다”며 “다만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근거해 CEO 제재가 가능한 상황인데, 여기서 의무 범위가 주관적이고 책임자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연은 장기적으로 내부 통제 기준을 법률 대신 업계 자율 규제를 통해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규정된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는 선언적 의미로 남겨 놓거나 장기적으론 삭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에서 ‘금융회사의 내부 통제 개선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은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최근 국내에서 내부 통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경영진 제재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며 “내부 통제 유인책으로 인적 제재를 활용하기 위해선 법률에 내부 통제 관련 의무와 책임이 경영진에게 있음이 명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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