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20대 대학생 아들 둘을 두고 있다. 큰아이는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이고 , 둘째는 지난해 입대해 강원도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다. ‘이대남(20대 남성)’ 둘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4·7 재보궐선거 전에 투표 얘기가 나오자 큰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는데 민주당은 아닌 듯하다. 자기들은 깨끗한 척하면서 나쁜 짓 다 하고, 아르바이트 자리 없애고, 여성들만 챙기는 것 같다.”
둘째 아이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말·휴일에 가족 단톡방에서 두 아이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 요즘 젊은 남성들이 느끼는 현 정부와 세태에 대한 불만·불안감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여성에 비해 보상 받지 못한다는 상대적 박탈감과 역차별에 대한 반감이 느껴진다.
지난 2019년 1월 30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20대 남성들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간담회가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렸다. 객석에 앉은 20대 남성 20여 명은 최저임금 인상에서 젠더 문제까지 날카로운 질문과 질타를 쏟아냈다. 젠더 이슈는 ‘진정한 양성 평등의 의미’ ‘여성할당제 등 여성 중심 정책 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일부는 주최 측 답변이 부족했는지 거듭 마이크를 잡았다.
돌이켜보면 재보궐선거에서 이대남이 여당에 표를 주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수년 전부터 계속된 그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니 실망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여당의 자업자득이다. 방송 3사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동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72.5%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22.2%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말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자료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20대 남성 지지율이 87%에 달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선거 참패에 놀란 여권이 이제야 이대남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부산을 떨고 있다. 박용진 의원은 최근 출간한 책에서 남녀 모두 100일가량 기초 군사훈련을 실시하자는 내용의 남녀 평등복무제 도입을 제안했다. 전용기 의원은 개헌을 해서라도 군 가산점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남국 의원도 국가공무원법 개정 등을 통해 군 경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거들었다. 김병기 의원은 군 복무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법률안 발의를 예고했다.
솔깃한 얘기들이다. 물론 젠더 문제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여성 우선 배려로 편중된 성 평등 정책을 고집하는 데 대한 불만이 높다. 여성할당제 등 현 정부의 기계적인 성 평등 정책들이 여성 우대에 그치지 않고 역차별 현상을 불러와 남성들이 피해를 입는 부분이 생기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남이 정부·여당에 화가 난 이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금 20대 남성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심화된 취업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 취업하지 못했거나 일자리를 구했더라도 비정규직이 많다.
집값 급등으로 인한 상실감도 상당하다. 여기에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 요원의 정규직 전환 갈등을 계기로 공정과 정의를 거스르는 정부의 행태에 대한 분노 또한 크다. 약자 보호는 이해하지만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공정한 게임 룰을 지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쟁의 출발과 과정에 부정이나 차별이 개입됐다고 판단되면 강하게 반발하는 까닭이다.
기자가 20대 남성 둘을 키우면서 느끼는 이대남의 특징은 이렇다.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려는 경향이 강해 ‘모두 똑같이’가 아니라 자신이 ‘노력한 만큼’을 원한다. 동등한 조건에서 진행된 경쟁의 결과로 각자가 얻는 것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경쟁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권이 이대남의 마음이 왜 돌아섰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은 하지 않은 채 군 경력 인정 등 선심 쓰듯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면 그들의 이탈은 가속화할 것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