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분리막 제조사인 SK(034730)아이이테크놀로지(SKIET)가 기업공개(IPO) 증거금 80조 원 시대를 열었다. 역대 최고 수요예측 경쟁률에 이은 증거금 1위 기록이다. 온갖 IPO 기록을 경신하면서 SKIET는 화려하게 증시에 입성하지만 투자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균등 배정을 노린 소액 투자자들은 사실상 빈손으로 SKIET의 상장을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IPO 대표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006800)은 29일 SKIET의 청약 증거금이 80조 9,017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1위의 자리를 수성했던 SK바이오사이언스의 63조 6,198억 원을 압도적으로 제친 기록이다.
증거금뿐 아니라 청약 참여 건수도 SK바이오사이언스(240만 건)의 2배에 육박한 474만 건을 기록했다. 통합 청약 경쟁률은 288.17 대 1, 증권사별로는 인수단으로 참여한 NH투자증권의 경쟁률이 502 대 1로 가장 높았고 뒤이어 삼성증권(443 대 1), 미래에셋증권(284 대 1), 한국투자증권(282 대 1), SK증권(225 대 1) 순이다.
SKIET가 성공적으로 자금 조달을 마쳤지만 474만 개의 주식 계좌를 총동원한 개미 군단은 청약 흥행이 반갑지는 않다. 신규 계좌를 개설하는 등 품을 들였지만 약 210만 개의 계좌는 균등 배정 방식으로는 공모주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례 배정을 노릴 만큼 청약 금액이 큰 투자자는 공모주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하지만 균등 배정만 노려 여러 증권사의 문을 두드린 투자자는 공모주를 단 한 주도 받지 못할 수 있다.
증권사별로는 NH투자증권(약 85만 개 계좌), 삼성증권(65만 개), 한국투자증권(43만 개), 미래에셋증권(19만 개) 순으로 균등 배정을 받지 못하는 투자자가 많았다. SK증권 투자자는 최소 1주의 공모주를 받는다. 다만 균등 배정의 혜택을 받는 투자자들도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계좌별로 잘해야 1주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SK바이오사이언스 때는 균등 배정으로만 한 증권사에서 2주 이상 받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실망감은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억 단위 투자자들에게 돌아오는 공모주 몫도 많지 않다. 1억 500만 원을 들이면 한 증권사에서 2,000주를 청약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균등 배정으로 1주, 비례 배정으로 3~4주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SKIET가 상장 당일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가 된 후 상한가 기록)’을 하더라도 기대 수익은 100만 원 안팎에 불과한 셈이다. 다만 미래에셋증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사주조합 실권주를 포함한 최종 배정 물량은 다음 달 3일 공시를 통해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사주조합 실권주가 일반 청약에 배정되면 개인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공모주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공모주 청약이 마무리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SKIET의 상장일 주가에 쏠리고 있다. SKIET의 공모가는 10만 5,000원. 상장 당일 따상을 기록하면 27만 3,000원으로 치솟는다. 시가총액은 19조 4,600억 원으로 지주사인 SK㈜의 몸값(20조 원)에 육박한다. 이는 코스피 시가총액 20위권 수준이다.
증권 업계는 주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상장 당일 상장 주식 수 대비 유통 가능 물량이 10%대에 불과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 SKIET의 분리막 사업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 확대와 함께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 IPO 관계자는 “수요예측 당시 상장 이후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확약한 기관 비율이 60%를 넘겼다”며 “기관들이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 대비 높을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낸 셈”이라고 말했다.
공모주를 받지 못한 개인들이 상장 이후 추격 매수를 나서는 것에는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모주들의 상장 이후 주가 변동성이 큰 탓이다. 6만 5,000원의 공모가로 코스피에 입성한 SK바이오사이언스는 상장 당일 따상을 기록, 주가가 16만 9,000원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크게 하락하다가 최근에 오르면서 현재 15만 500원을 기록 중이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바이오사이언스는 공모가 대비 투자 수익은 100%를 넘겼으나 상장 당일 추격 매수한 투자자는 손실을 봤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장밋빛 전망만 가지고 매수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e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