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가족이 12조 원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시중은행에서 수천억 원의 신용 대출을 받으면서 ‘징벌적 상속세’ 완화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더 이상의 갑론을박을 끝내고 글로벌 흐름과 현실을 반영한 적정한 상속세율로 조정해 승계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9일 과세 당국과 재계에 따르면 삼성 일가는 30일 2조 원가량의 1차 상속세를 납부할 예정이다.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이달 말부터 앞으로 5년간 약 2조 원씩 6번 분할 납부한다.
현재 적용되는 최고세율 50%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9년 세수 확보 목적으로 45%에서 인상한 뒤 유지돼왔다. 과세표준과 공제기준도 22년째 그대로다. 전 세계에서 우리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국가는 일본(55%)뿐이다. 우리는 최대주주 지분 할증 20%까지 적용하면 총 60%에 달한다. 미국(40%), 독일(30%) 등 대부분 국가의 최고세율은 30~40%여서 조세 정책이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스웨덴 등 13개 국가는 아예 상속세가 없다.
글로벌 자본 이동이 활발한 시대에 특정 국가의 세율이 높으면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영속성과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은 “최고세율 50%는 정상적 범위를 벗어나 기업의 거버넌스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살아 있을 때 최고세율 45%의 소득세를 내는데 다시 상속세를 과세하는 이중과세 논란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우리와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최고세율 기준 상속세가 소득세보다 낮다. 상속세수는 2018년 2조 8,000억 원에서 지난해 3조 9,000억 원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상속세 과세체계 개선방안 검토를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 정부는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지만 ‘부의 재분배’ 철학이 확고한 현 정권의 눈치를 보며 꿈쩍도 하지 않을 분위기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이날 “상속세율 인하는 별도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기재부 세제실장을 지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진 세제 정책에 따른 폐단이 더 크다”며 “시대가 바뀌었는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어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