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가 잇따라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하며 배터리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를 만들 때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배터리 제조 업체들이 생산한 배터리 셀을 납품받아서 썼다. 그러나 앞으로는 원하는 성능의 배터리를 직접 만들겠다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의 독자 배터리 행보에 이미 배터리 기술 및 생산 설비를 갖춘 국내 배터리 업체와 정면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포드는 지난 28일 1억8,500만달러(약 2,058억원)를 투입해 미국 미시간 주 남동부에 배터리 개발센터를 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해 최종적으로 자체 배터리 셀을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포드와 협력관계인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유럽 내 배터리 공장 6곳을 증설하고 연간 240GWh 규모의 배터리 셀 자체 생산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는 독일 배터리 업체 ATW 오토메이션을 인수해 배터리를 자체 생산할 계획이다. BMW는 독일 뮌헨에 배터리 셀 파일럿 공장을 짓고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는 “배터리를 자체 제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아직까지 외부 조달에 만족한다”며 균형을 잡고 있다.
완성차 업계는 배터리 내재화를 통해 배터리 제조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비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기차 가격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를 직접 만들지 못하면 자동차 ‘껍데기’만 만드는 격이라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완성차 업체의 내재화에 이어 CATL 등 중국 배터리의 질주까지 겹쳐지면 ‘K배터리’의 성장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재화를 위해 투자를 지속해온 테슬라조차 배터리 업체들과의 협력을 등한시하지 않고 있다”며 “배터리 제조사들이 규모의 경제로 확보한 가격경쟁력을 완성차 업체들이 따라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희 기자 d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