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라고 다 같은 초록이요, 블랙이라 똑같은 블랙이라고 생각하면 섭섭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초록’과 ‘가장 화려한 블랙’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뮤지컬 ‘위키드’와 ‘시카고’에는 감동과 감탄으로 무대와 객석을 물들이는 매력적인 컬러가 존재한다. 두 작품의 상징이 된 이 초록과 블랙은 특별한 노력과 관리로 ‘색(色) 다른 무대’를 완성한다.
◇초록은 동색이 아니다 ‘위키드’=뮤지컬 여자 주인공 캐릭터 가운데 독특한 외모를 꼽는다면 단연 위키드의 주인공 엘파바다. 극 중에서 초록색 신호등, 브로콜리라는 주변의 놀림을 받는 데서 알 수 있듯 엘파바의 피부는 초록색이다. 뮤지컬을 볼 때마다 궁금해지는 엘파바의 이 특별한 피부색을 입히는 데는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맥(MAC)이 특별 제작한 초록색 파운데이션이 쓰인다. 배우의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초연 때부터, 전 세계 공연에서 똑같이 화장품 전문 기업이 만든 제품을 쓰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랜드스케이프 그린(Landscape Green)’이라는 색상 명의 이 파운데이션이 호주, 뉴욕 등에서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된다는 점이다. 수년 전까지는 한국에서도 같은 제품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위키드 제작사 관계자는 “일반인이 많이 쓰는 색상이 아니라 시중에 물량이 많이 풀리지는 않는다”며 “(국내) 판매가 됐던 2013·2016년 시즌에는 해외에서 메이크업 제품을 공수하면서 일부는 국내에서 조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배우는 엘파바의 녹색 피부를 위해 얇은 천으로 만든 특수 의상을 덧대어 입지만, 얼굴은 물론이고 어깨·목·귀·손까지 모두 초록으로 물들인다. 그린 메이크업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1시간 40분 정도. 초록 마녀로의 변신은 붓으로 쓱쓱 덧칠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각 부위에 붓칠한 뒤에는 땀에 화장이 녹아내리지 않도록 코팅용 파우더도 바른다.
1막과 2막의 ‘초록의 변화’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엘파바의 매력적인 피부색에는 그의 성장과 함께 미세한 변화가 있다. 1막에서 학생이었던 엘파바가 2막에서 성인이 되며 초록 피부 위엔 그윽한 보랏빛의 색조 화장이 더해져 성숙한 여성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블랙의 화려한 변주 ‘시카고’=뮤지컬 시카고 하면 떠오르는 색상은 단연 블랙이다. 매혹적인 재즈 선율을 타고 몸에 달라붙는 올 블랙 의상의 배우들은 관능적인 춤 사위를 선보인다.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등 온갖 배신과 범죄, 환락에 취해 있던 1920년대 미국 시카고, 그중에서도 악명 높은 여자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당대 사회의 위선을 신랄하게 꼬집는 블랙 코미디다. 살인죄로 복역 중이지만, 연예인 급 인기를 발판 삼아 무죄를 선고 받으려는 벨마 켈리와 록시 하트가 주인공인데, 화려하면서도 암울했던 ‘광란의 시대’를 표현하기에 블랙만큼 적절한 색깔도 없어 보인다. 시카고를 대표하는 블랙 의상은 나라마다 다르다. 극 전체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나라 별로 배우의 체형을 살리기 위해 세부 디자인은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협의 하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지난 2018년 공연 당시 벨마 켈리 역의 박칼린은 큰 키와 서구적인 체형을 고려해 이전 국내 공연에서 선보이지 않은 스타일의 의상으로 무대에 올랐다. 같은 시즌에 출연하는 같은 배역이라 하더라도 배우마다 체형이나 신체 단점을 고려해 조금씩 다른 디자인이 적용된다. 시카고는 다른 뮤지컬 작품과 비교해 배우들의 의상 전환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극 중 록시 하트의 경우 총 네 벌의 다른 옷을 입고 나온다. 사랑스러움을 한껏 강조하는 장면에서는 새틴 소재의 슬립에 팔 장식이나 레이스가 달린 의상을, 교도소 수감 후로는 이렇다 할 장식 없는 다른 질감의 옷을 입는다. 한국 공연 제작사인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의상이 다 검은색이다 보니 주연 배우들의 의상 변화가 없다고 아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며 “록시의 경우 같은 블랙이라도 장면에 따라 천 소재나 톤, 디자인이 전혀 다른 의상들이 등장한다”고 귀띔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