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경기회복서 인플레 관리로 전환…힘 실리는 '조기 금리인상'

금통위 "금융안정 위해 필요"
시장선 "내달 인상 신호 줄것"
"가계부채 문제 키울것" 우려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금리 인상론에 불을 지피며 한국은행의 선제적 금리 인상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내년 말쯤 이뤄질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실물경제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데다 물가 상승 압박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무게중심도 경기회복에서 가계와 기업 부채, 부동산 및 금융 시장의 자산 거품 등 선제적 리스크 관리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준비되지 않은 섣부른 긴축이 ‘영끌’ ‘빚투’ 등으로 늘어난 가계 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5일 한국은행의 ‘4월 15일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올해 1분기 금융권 가계 대출이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에도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금융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증대됐다”며 “금융 안정 이슈에 대한 통화정책적 차원의 고려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금통위원도 “우리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질 경우에는 지금보다 금융 안정에 더 무게를 둔 통화정책 운영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중 자금이 저금리 예금 대출에서 투기성 강한 암호화폐 등 고수익·고위험 금융 상품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금리 인상으로 이 같은 움직임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과잉 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점 역시 조기 금리 인상론의 근거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로 나타나 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데다 올 2분기 물가가 한은의 목표인 2%를 웃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기에 세계 경기회복으로 국제 유가도 상승하고 구리·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도 오름세다. 정부는 물가 상승이 일시적 요인이라고 일축하지만 고물가 상황이 이어질 경우 금리 상승을 피할 수 없다. 여기에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보다 1.6% 상승해 시장 예측치인 0.7~1%를 크게 웃돌고 올해 4% 성장까지 노려볼 수 있다는 점도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이유다.


그동안 한국의 기준금리는 외국인 투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특히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등 통화정책 변화 과정에서 한은은 한발짝 먼저 움직여왔다. 시장에서는 이주열 한은 총재가 다음 달 12일 ‘한은 71주년 창립 기념사’에서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음 달 기념사에서 이 총재가 인플레이션을 잘 모니터하겠다는 수준으로 금리 인상 시그널을 넌지시 밝힐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금리 인상이 가계 부채와 부동산·주식 시장의 연쇄 위기를 부를 뇌관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대출로 버티던 기업과 가계가 금리 인상으로 디폴트(채무 불이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가계 대출 잔액은 690조 9,000억 원으로 3월 말보다 9조2,000억원 늘었다. 증가 폭은 2월(3조 7,900억 원), 3월(3조 4,000억 원)의 3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계 대출 증가가 부동산이나 암호화폐·주식 등 고위험·고수익 자산과 연결됐다고 보고 있다. 금리 인상이 자산 폭락과 디폴트 등 연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근거다. 특히 수년간 저금리를 활용한 대출로 아파트 등 부동산 재테크가 만연했던 만큼 부동산 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홍우형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금리가 매우 낮았던 만큼 금리를 약간만 올리더라도 주식·부동산이 도미노로 무너지고 경제 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잇따른 추가경정예산으로 나라 살림 씀씀이가 커진 점도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재난지원금 발급 등을 위한 추경으로 매년 10조 원가량씩 국채를 발행해왔다. 금리가 올라갈 경우 국채 이자 부담도 함께 커진다. 재정 당국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늘어난 씀씀이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국민 재난위로금 지급 등으로 재정지출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