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랭커스터 하우스


2017년 1월 17일 테레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가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Lancaster House)에서 긴급 연설을 했다. 메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유럽연합(EU) 단일 시장과 관세 동맹을 탈퇴하고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영국이 조건 없이 EU를 떠나는 ‘하드 브렉시트’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이 소식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였다. 랭커스터 하우스에서는 이처럼 역사적 의미를 갖는 행사가 자주 열렸다.


2010년 11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서명한 랭커스터 하우스 조약도 이곳에서 체결됐다. 이 조약은 영국과 프랑스가 국방·안보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으로 껄끄럽던 양국 관계를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됐다. 랭커스터 하우스가 정치 지도자의 중대 회견이나 국제 회의가 열리는 장소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825년 요크 공작이 런던 세인트 제임스 지구에 새 저택을 짓기 시작할 때는 ‘요크 하우스’로 불렸다. 하지만 요크 공작이 공사를 끝내지 못하고 죽자 스태퍼드 후작이 매입해 3층 저택으로 완공한 후 ‘스태퍼드 하우스’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의 명칭으로 불린 것은 1912년부터였다. 영국 북서부 소도시인 랭커스터 출신의 비누 제조업자가 구입해 자신의 고향 지명을 붙인 것이다. 이 사업가가 이듬해 명칭 유지를 조건으로 국가에 헌납한 뒤 이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영국 정부의 와인 저장고, 박물관 등으로 쓰였다.


최근 랭커스터 하우스가 글로벌 외교전의 현장이 됐다. 4~5일 이곳에서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 회의가 열렸는데 한국과 호주·인도·남아공 등도 초청국으로 참석했다. 각국의 외교 수장들은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 정세가 더욱 더 소용돌이치고 있다. 지도자의 외교 전략과 말 한 마디에 따라 국운이 달라질 수 있는 시점이다. 우리 외교안보 라인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가치 동맹으로 중심을 잡는 실사구시 외교로 국익과 안보를 지켜야 한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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