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통 업체에서 배송일을 하던 서모(33) 씨는 지난 3월 일을 그만두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새벽에 출근해 12시간 가까이 일을 하다 보니 피로도 누적됐고 최근 동료들이 잇따라 다치거나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배달 대행 업체에서 라이더 일을 하고 있는 이모(29) 씨도 요즘 전직을 고민하고 있다. 배달 지연, 오배송, 오토바이 사고 등 문제 발생 시 대부분 라이더가 책임지게 돼 있는 계약 구조로 억울하게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거대 스타트업’ 기업들이 무서운 속도로 급성장하는 가운데 그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의 희생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높은 노동 강도와 그에 비해 낮은 처우를 호소하는 곳은 주로 소셜커머스 업체와 배달 대행 업체 등이다.
‘로켓배송’으로 빨리 물품을 배달해주는 쿠팡에서는 최근 잇따라 노동자들이 사망하면서 이들의 노동 강도가 주목받고 있다. 쿠팡 동료들과 유가족들은 과로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따른 사망이라고 주장하면서 쿠팡의 새벽 배송 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밤낮 구분 없이 배달을 하는 쿠팡의 배송 체계가 회사를 급성장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안전을 더욱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급기야 정치권에서는 쿠팡의 새벽 배송 이용 자제를 호소하기까지 했다.
배송 기사 등 노동자들이 위험으로 몰리는 것은 쿠팡뿐만이 아니다. 한 택배사의 배송 기사는 “열악한 노동환경은 쿠팡·티몬·위메프 등 대부분의 배송 업체나 택배사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며 “이런 회사들의 성장 비결은 기사들 쥐어짜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배달 업체들의 노동환경도 소셜커머스 업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초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렸을 때 배달 노동자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의 온라인 게시판에는 “곳곳에서 라이더들이 넘어지고 있다”며 폭설·폭우와 같은 악천후 시 배달 중단을 요구했다. 당시 배달의민족(배민)·요기요·쿠팡이츠 등 배달 업체들은 라이더들의 안전은 신경쓰지 않은 듯 정상적으로 주문을 받고 있었다.
라이더 김모(36) 씨는 “배달 요청인 ‘콜’이 왔을 때 이를 거부하면 불이익이 돌아가는데 폭우가 쏟아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며 “빨리 배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호 위반은 다반사고 라이더를 위한 안전장치는 거의 없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배송 업체의 한 관계자는 “빨리 배달하는 게 경쟁력이 되다 보니 현장 기사들의 안전 보장 등이 미흡하고 노동 강도도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와 같은 배송·배달 기사의 노동환경은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