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학자 박명림 “벼락감투 쓴 86세대 ‘벼락속물’로…文정부, 촛불 가치 ‘공정·정의’ 폐기” [청론직설]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정치학)
朴정부는 ‘보수 절반’, 文정부는 ‘진보 절반’ 벽에 갇혀 실패
재판관 이념 성향따라 법적 판단 달라져 ‘법치’ 아닌 ‘인치’
86세대는 전략전술 능한 투사…“민주주의자 아니었다”
30~40% 득표 대통령이 권력 100% ‘독임’…협치 실종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0일 대학 연구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촛불 시위를 계기로 우리 국민이 보편적으로 갖게 된 공정에 대한 열망을 놓쳤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실정보다 문재인 정부의 독단이 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지난 4월 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29%까지 추락해 30% 선이 무너졌다. 한 주 만에 반등하기는 했지만 남은 임기 1년 동안 레임덕(권력 누수)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집권 이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잇따라 압승을 거뒀던 더불어민주당은 4·7 재보선에서 뼈아픈 참패를 당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고 여당이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은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일자리·부동산 정책 등에서 실패한 탓이 크다. 문 대통령은 4년 전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정권 주도 세력의 ‘내로남불’ 행태로 공정과 정의는 무너졌다.


문 대통령 취임 4주년을 맞아 ‘진보 정치학자’로 손꼽히는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정치학)를 만나 촛불 시위 이후 문재인 정부를 총평하는 자리를 가졌다. 박 교수는 10일 연세대 연구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가 ‘보수 절반’에 갇혔다면 문재인 정부는 ‘진보 절반’에 갇혔다”며 “촛불 시위를 계기로 우리 국민이 보편적으로 갖게 된 공정에 대한 열망을 놓쳤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실정보다 문재인 정부의 독단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법의 지배가 법에 의한 지배를 넘어 법률가에 의한 지배로 변질됐다”면서 “재판관이 진보 진영인지 보수 진영인지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지는 것은 법치(法治)가 인치(人治)로 전락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공정이 우리 시대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뭔가.


△촛불 시위 이후 이렇게까지 공정이 우리 사회의 핵심 화두로 떠오를 줄 몰랐다. 당시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탄핵을 외쳤고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했던 일련의 과정은 불공정과 비정상을 공정과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 동안 촛불의 근본 가치인 공정과 정의를 너무도 빨리 상실·폐기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민심을 왜곡했다는 말인가.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탄핵을 외친 것은 진보의 관점에서 보수 정부를 규탄했던 게 아니다. 국민들은 보편적 의미로서 공정과 정의에 눈을 뜬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진보에 대한 절대적 지지로 착각했다. 박근혜 정부가 ‘보수 절반’에 갇혔다면 문재인 정부는 ‘진보 절반’에 갇힌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던 성숙한 정의감, 공정에 대한 열망을 놓쳤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실정보다 문재인 정부의 독단이 더 심각한 문제다. 촛불 시위를 통해 우리 국민이 사실상 통합을 이뤘는데 문재인 정부가 자기 독단에 빠져 통합을 진보 절반의 것으로 왜곡·후퇴시켰다.


-문 대통령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약속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 사태’가 시발점인가.


△최순실 사태가 국정 운영 주체들이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가에 대한 즉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면 조국 사태는 ‘핵심 가치’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있다. 조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사법 개혁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진보 진영의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그런데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개혁을 주도했던 세력들이 자신들이 외쳤던 가치를 실천하지 않는 것을 넘어 그 가치를 오염시켰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박주민 의원 등 내각과 청와대·의회에 포진했던 자칭 개혁 세력들이 자기 배반과 자기 모순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작게는 문재인 정부, 조금 더 확장하면 86세대, 더 넓게는 개혁 진영 전체의 가치를 허물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현 정부는 ‘검찰 개혁’을 내세웠지만 결국 ‘검찰 장악’ 시도였다는 지적이 많다.


△조국 사태로 민심이 이반됐을 때 그것대로 성찰하고 검찰 개혁을 별개로 추진해야 했는데 이른바 ‘검찰 개혁’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던 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집권 세력의 공적 가치, 공준(공통 준거), 도덕적 기준 등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졌는데 현 정권은 부분적 과제인 검찰 개혁으로 치환 혹은 제압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개혁 세력의 근본 가치를 놓쳤고 검찰 개혁 역시 철저하게 실패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법의 지배가 법에 의한 지배로 대체됐다는 지적도 있는데.


△사법의 정치화가 되면 ‘법의 지배’는 ‘법에 의한 지배’를 넘어 ‘법률가에 의한 지배’가 된다. 법은 행위 주체가 아닌 행위를 문제 삼는다. 법률가에 의한 지배가 되면 법치가 아닌 인치로 전락한다. 정상적인 민주공화국은 법이 가장 적은 사회다. 정치에 의해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때 법치로 넘어가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를 보면 의회에서 합의가 불가능해지면서 검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헌법재판소 등으로 판단을 넘기고 법의 지배가 아닌 법률가에 의한 지배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된 이유가 뭔가.


△현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 탄핵 이후 닥친 국가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했는데 ‘적폐 청산’을 국정 최우선과제로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탄핵 연대는 깨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적폐 청산을 하면서 검찰 권력은 엄청나게 커졌고, 얼마 후 검찰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하자 검찰을 적폐로 몰아세우는 자기 모순에 빠졌다. 자신들이 그토록 외쳤던 살아 있는 권력 견제와 감시를 위한 특별감찰관 임명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공수처를 밀어붙이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대통령의 권한이 과잉 대표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의 대통령은 전체 유권자 대비 평균 30~40%의 득표를 하는데 권력을 100% 독임한다. 이는 민주주의 근본 원리에 위반되는 것이다. 대표성을 확보하게 만들려면 결선투표를 통해 득표율을 높이든지 아니면 권한을 줄여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선출된 대통령은 전체 국민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협치를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4년을 맞이했는데 총평을 한다면.


△정치학자로서 가장 절망하는 지점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의 소멸이다. 내가 말하는 진보는 특정 세력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우리 시대가 나아갈 방향과 가치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생명·평등·환경 등 훨씬 중요한 가치가 문재인 정부 들어 퇴행했다는 사실은 이율배반적이다.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예측 가능하고 안전하며 안온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자살이 폭증하고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을까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평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입으로는 페미니즘을 외치지만 주요 정책 결정에서 실질적 성 평등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부동산 양극화로 수많은 국민을 ‘벼락거지’로 만들어놓고 진보의 시대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현 정부의 주요 지역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합친 것보다 월등히 많다. 이렇게 해놓고 친환경적인 정부라고 말할 수 있나. 생명·평등·환경 등이 모두 대통령 5년 임기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는 중요한 가치인데 현 정부는 이를 퇴보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0일 대학 연구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86세대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만 민주주의자가 아니었고, 정의를 외쳤지만 정의롭지 않은 세대"라고 규졍했다. /성형주 기자


-현 정권의 주축 세력인 ‘86세대’에 대해 평가한다면.


△1960~1970년대 학번 세대가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면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86세대는 5~10년 굉장히 짧은 시기, 평균 6~7년 민주화 운동으로 가시적 성과를 이뤄냈다. 세대로서 고난의 기간이 매우 짧았으며 실존적 고뇌 역시 적었다. 반면 민주화 업적에 비해 권력의 과실을 굉장히 빨리 누렸다. 1960~1970년대 세대가 ‘민주지사’를 지향하면서 양심과 도덕성을 중시했다면 86세대는 자신들을 ‘민주투사’라 규정했고 전략 전술, 선전 선동에 매우 탁월했다. 이념적으로 옳고, 전략 전술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양심이나 도덕성은 후순위로 밀리곤 했다. 당연히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 정신, 사법부 독립, 교육 개혁 등 진보의 가치가 유예되거나 오염될 수밖에 없다. 벼락출세로 벼락명예를 획득했지만 벼락속물·벼락오물로 전락한 세대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만 민주주의자가 아니었고, 정의를 외쳤지만 정의롭지 않은 세대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1년 동안 추진해야 할 주요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 정치가 진보 기득 세력과 보수 기득 세력의 대결로 전락한 만큼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보의 가치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생명·자유·인권·복지·환경·평화 등 진보의 근본 가치를 복원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실행하는 씨를 뿌리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의회(Congress)가 본래 의미인 ‘함께(con) 나아가다(gress)’를 실현하는 ‘협치의 장(場)’으로 거듭나야 한다. 좌파와 우파가 함께 의회에서 대화를 통해 타협을 하면 국정이 안정된다. 또 합의 수준이 높아지면 정책 집행률이 높아지면서 국민들이 안온하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He is…


1963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하버드대 하버드-옌칭연구소 협동연구학자,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및 독일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장, 인간 평화와 치유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등이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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