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4나노까지 삼성에 밀렸지만…TSMC, 과감한 투자로 5·7나노서 우위

[내우외환 K반도체] <하> 파운드리 최강자 TSMC 왜 강한가 -5대 강점
② 압도적 기술력-평면 구조 한계 벗고 '핀펫' 등 초미세공정 주도
③ 틈새 경영전략-저가 완구용 칩 라인, 차량용으로 바꿔 가치 UP
④ 보안·고객관리-애플·퀄컴·엔비디아 등 업계 아우르는 고객사
⑤ 정부·학계 지원-R&D에 세제 혜택 주고 고급인력 수천명 지원



“나는 계산된 위험만 감수한다.”


‘반도체 업계의 거인(巨人)’으로 불리는 장중머우 TSMC 창업주 겸 전 회장은 이렇게 말하며 미래 경쟁력이 될 10㎚ 이하 선단 공정에 대한 투자를 밀어붙였다. 전 세계 많은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출렁였던 지난 2009년 사임한 지 4년 만에 다시 회장으로 복귀한 장중머우는 경쟁사들이 보수적으로 대응하던 시기에 오히려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를 쏟아부으며 추월의 기반을 닦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4㎚ 공정이 주를 이뤘던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TSMC에 앞섰던 삼성전자는 7㎚와 2㎚ 공정 경쟁에서는 ‘최초’ 타이틀을 빼앗겼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라는 비즈니스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 장중머우는 2018년 경영에서 손을 뗐지만 미중 기술 패권의 무대가 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TSMC의 존재는 한껏 부각되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파운드리 분야의 최강자이자 ‘글로벌 반도체 빅2’를 점하고 있는 TSMC의 강점은 크게 다섯 가지다. 그중에서도 전문가들은 과감한 투자를 시가총액 652조 원을 자랑하는 TSMC의 힘으로 꼽는다. 지금도 TSMC는 10㎚ 이하 초미세 공정에서의 선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R&D와 설비에 대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TSMC는 단 한번도 R&D 투자(국내 총연구개발비)를 줄인 적이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장을 흔들었던 2009년부터 2011년을 봐도 215억 대만달러, 297억 대만달러, 338억 대만달러로 R&D 투자 규모는 크게 늘었다.


조 단위가 기본인 설비투자 면에서도 TSMC는 대담했다. 2019년 17조 6,000억 원을 생산 라인 신설과 기존 라인 보수, 장비 구입 등에 활용했던 TSMC는 지난해에는 19조 원을 쏟아부었다.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인 31조 원을 오롯이 설비투자에 투입할 계획도 밝혔다.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이에 질세라 2019년 22조 6,000억 원, 2020년 35조 원을 투입했지만 디스플레이에 대한 투자도 포함된 규모다. 또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외 메모리 반도체 사업도 영위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라는 점을 비교한다면 TSMC가 추진한 투자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2013년 ‘큰손’ 애플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 주문을 따내고 해당 팹에서 올린 매출의 절반을 투자로 되돌린 일도 유명하다. 이렇다 보니 현금성 자산을 재투자하는 비율은 해마다 8~13% 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난 4월 16일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가 “올해 반도체 산업이 1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설비투자 계획을 280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높이기로 했다”고 밝힌 것도 장중머우의 과감한 투자 DNA를 이어받은 판단으로 읽힌다.


이 같은 투자는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발현되며 TSMC의 또 다른 무기가 되고 있다. 기존 평면(2D) 구조의 한계를 극복한 공정기술인 3㎚ 핀펫(FinFET)을 비롯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활용한 포토리소그래피 기술, 맞춤형 패키지 등이 TSMC의 자랑으로 꼽힌다. TSMC는 지난해 2㎚ 기술이 완전한 발달 단계에 진입했다며 곧 양산에 들어갈 계획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TSMC 실적 보고서에는 인텔이나 삼성전자에 앞서 초미세 공정을 이끌어가는 주체라는 자부심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반도체 칩의 용량이 18개월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구현하는 것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고객에 세계 최초(first-to-market) 양산품을 제공하는 것은 목표로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는 표현을 꼭 넣는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틈새를 노린 경영 전략도 성공 이유다. 장중머우가 1987년 기존 반도체 산업에 존재하지 않았던 파운드리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대만을 반도체 강국으로 끌어올렸듯 21세기의 TSMC도 끊임없이 시장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저가 완구용 칩 생산 라인으로 활용하던 6인치 팹을 몇 가지 인증 절차를 거쳐 자동차용 칩 주문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바꾼 것은 업계에 자주 회자되는 틈새 전략이다. 이 과정을 통해 TSMC는 오래된 생산 라인인 6인치 팹의 가치를 100배 이상 높였으며 전 세계를 뒤흔든 ‘반도체 쇼티지’ 상황에서 가격을 최대 15%까지 높이는 등 매출 극대화를 꾀할 수 있었다. 생산 가능한 분야를 확장해 다양한 주문에 응대할 수 있는 것도 TSMC의 강점이다. TSMC는 2019년 기준 499곳의 고객사를 위해 272개 서로 다른 기술을 활용해 1만 761개의 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업계는 TSMC가 고객사와 오랜 기간 밀착된 관계를 맺어왔으며 대만 정부와 학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도 성공 요인으로 지적한다. 특히 연구실이나 공장 내의 수준 높은 보안과 더불어 ‘우리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경영 철학은 애플·퀄컴·엔비디아·르네사스·인피니언 등 반도체와 정보기술(IT) 업계를 아우르는 고객사를 둔 바탕이다. 신주과학단지를 비롯해 대만에만 8개 팹을 거느린 TSMC에 꾸준히 R&D 세제 혜택과 수천여 명의 고급 연구 인력을 지원한 대만 정부의 노력도 TSMC를 만든 요인으로 거론된다. 박영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는 “실리콘밸리와 대만의 긴밀한 관계와 반도체 시장이 돌아가는 판을 기민하게 아는 것도 고객사 관리에 특출난 TSMC의 강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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