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택의 세상보기] 도지코인과 김치 프리미엄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국내 암호화폐 잡코인 중심 과열
새 규제 만들어 싹 자르기보다
현행법으로 불법 막는게 효과적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수석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한 30대 직장인의 글이 청와대 국민 청원에 올라 있다. “암호화폐는 실체가 모호한 가상자산에 불과하고 가상자산 시장에 함부로 뛰어드는 게 올바른 길은 아니며,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어른들이 가르쳐줘야 한다”는 국회 발언 때문이다.


암호화폐의 원조는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개발자가 만든 비트코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위변조가 불가능하며 전체 수량을 한정하고 채굴 과정을 통해 보안성을 강화했다. 일반 화폐처럼 중앙은행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도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디지털 화폐의 특성을 갖췄다. 베네수엘라처럼 인플레이션이 1만 %를 넘는 나라에서 비트코인 채굴 활동이 활발하고 인플레이션과 통화 하락을 겪은 터키에서 열풍이 부는 이유다.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발전에 긍정적이다. 미래 유망 기술인 블록체인이 암호화폐 개발과 발굴로 향상되고 암호화폐로 몰리는 돈이 투자 기반이 된다고 본다. 핀테크 및 플랫폼 사업자들도 새로운 결제 수단의 등장으로 사업 영역이 확대되고 이용자 또한 편리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암호화폐 열풍은 정도가 지나치다. 거래 규모가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금액보다 많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와 셀트리온 같은 신성장 바이오 기업을 망라한 상장 주식 전체보다 암호화폐를 더 많이 거래한다. 거래 종목도 비트코인 중심이 아니라 알트코인, 우리말로 하면 잡(雜)코인이 대부분이다.


한 예가 일본 시바견을 로고로 조크 삼아 만들었다는 도지코인으로 이는 한국에서 하루 17조 원이나 거래되기도 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트윗에서 자주 언급한 덕택에 가격이 급등했는데 최근 방송에서 도지코인이 ‘사기(hustle)’라고 농담하는 바람에 하락하기도 했다. 도지코인 가격은 올해 들어 5,000%가량 뛰었는데 비트코인이 100% 남짓 오른 것과 대조되며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는 의미다.


한국의 암호화폐 가격은 같은 종목이라도 외국 가격에 비해 비싸다. 차이를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부르는데 20% 이상일 때가 있었고 현재도 두 자릿수 수준이다. 다른 나라의 수요 공급이 정상적이라면 우리나라는 수요가 지나치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흡수해 안정적인 투자를 유도하고 불법은 단호하게 막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주문이 있다. 여당 의원 20여 명이 암호화폐거래소를 인가제로 하고 불공정 거래에 따른 이득과 불법 행위에 동원된 자금을 몰수하는 가상자산업법도 발의했다.


그러나 배재광 블록체인거버넌스앤컨센서스위원회 의장은 이 같은 법안이 독점력 확대와 규제 강화로 싹을 자르는 역효과를 낸다고 우려한다. 사실 선거를 앞둔 때 국회에서 암호화폐 같은 전문적이고 혁신적인 분야에 대해 덜컥 법을 만드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중앙은행 주도의 디지털 화폐 창설 움직임 등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거래소·은행·감독기관이 조율해 암호화폐 상장 요건을 강화하고 현행법을 활용해 사기 및 불공정 행위를 막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암호화폐는 발행 경비 등을 빼고 당첨금을 주는 로또보다 기대 수익률이 높다. 암호화폐가 오르고 내리는 확률을 절반씩으로 봤을 때 하늘의 별 따기 같은 복권 당첨 확률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암호화폐가 막힌 부동산이나 취업난·생활난에 대한 돌파구가 될 수는 없다. 머스크도 말했다. “암호화폐에 필수 자금을 투자하면 안 된다. 그것은 현명하지 않다”라고.


/여론독자부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