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12일 “원칙대로 하면 제일 조용하고 합당하지 않은가”라며 친문 의원 중심으로 제기되는 대선 경선 연기론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계파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당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또 이 지사는 발기인 규모만 1만 5,000여 명에 이르는 지지 모임인 ‘민주평화광장’을 띄우며 세몰이에 돌입했다.
이 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비주거용 부동산 공평 과세 실현’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당내에서 경선 연기론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 질문에 “국민들이 안 그래도 삶이 버거운데 민생이나 생활 개혁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선 후보를 ‘대선 180일 전’에 선출하도록 당헌을 존중하다는 것이 옳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다만 당청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임혜숙·박준영·노형욱 장관 후보자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서는 “청와대와 국회가 당원의 힘을 감안해 적절하게 결정하리라 생각한다”며 입장 표명을 꺼렸다.
이 지사가 최대 논란거리인 대선 경선 연기에 대해 불가 방침을 드러내면서 당내 주류인 친문 세력과의 갈등은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경선 연기론을 공식 제기한 친문 세력은 물론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 측과의 대립이 심화돼 여권 내 분열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 지사를 제외한 다른 후보군은 공식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대선 경선 연기를 선호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경선 연기를 통해 시간을 번 뒤 지지율을 끌어올릴 경우 정 전 총리와 이 전 대표가 경선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정치적 셈법 때문이다.
이 지사가 외곽 지지 모임을 출범시키면서 당내 대권 후보들 간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사는 이날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상암연구센터에서 열린 민주평화광장 출범식에 참석했다. 민주평화광장은 전·현직 국회의원과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발기인 규모만 1만 5,000여 명에 이르는 매머드급 조직이다. 5선 중진인 조정식 민주당 의원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공동대표를 맡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내부 분열 프레임을 우려해 그동안 야당과 관료 비판에 주력하며 존재감을 키워왔던 여권 대선 주자들이 상호 간의 날 선 공방도 불사하는 등 신경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지난 11일 정 전 총리는 ‘부동산 관료 책임론’을 띄운 이 지사를 향해 “지방자치단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며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 지사 측이 관료의 책임을 거론하면서 사실상 정 전 총리, 이 전 대표를 동시에 비판하자 되받아친 것이다. 이 전 대표 측도 “제 얼굴에 침 뱉기”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 지사는 이날도 정 전 총리의 핵심 공약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감추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뒤처지는 정 전 총리 측에서 최근 이 지사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자 무대응 기조를 유지했던 이 지사 측이 공세 모드로 전략을 바꾼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지사는 정 전 총리의 ‘사회 초년생을 위한 1억 원 통장’ 공약에 대한 질문에 “장기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국가 재정지출이 경제 선순환에 직접 도움이 되는 방식이 우선”이라며 자신이 제안한 기본소득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