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TSMC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 반도체 생태계 들여다보니

메모리반도체·시스템반도체 시장 특성 한 번에 훑어보기
떠오르는 파운드리 시장...TSMC, ‘슈퍼을’로 불리는 이유
‘슈퍼사이클’ 곧 온다? 수요·공급에 따른 반도체 빅사이클
자본력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 선점한 대한민국이지만
커지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핵심은 자본력보다 ‘인재’

반도체 관련 기사를 읽다보면 늘 보이는 용어들이 있죠. 반도체 빅사이클, 파운드리, IDM. 낯선 용어들이시라고요? 걱정 마세요. 반도체의 기초를 다룬 지난 편에 이어 이번 기사에서는 반도체 산업에 대해 훑어보겠습니다.










TSMC는 아는데 파운드리는 모른다고? 반도체 생태계 깔끔하게 정리해드림!

◇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제작 과정, 어떻게 다를까


일단 반도체 산업 생태계부터 파봅시다.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는 제작 과정이 꽤나 다릅니다. 먼저 메모리 반도체는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꽉 잡고 있는데요. 하나의 기업이 반도체의 설계부터 생산까지 쭉 맡아 진행하죠. 이런 기업들을 종합반도체 기업, 즉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이라고 부릅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다릅니다. 설계하는 회사 따로, 제작하는 회사 따로, 또 검수하는 회사 따로. 각자의 분야가 나눠져 있죠. 시스템 반도체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엄청나게 많은 단계와 기술이 들어가는데다 어떤 제품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또 기능에 따라 종류 또한 수없이 많다보니 생산부터 설계까지 한 기업이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하나의 반도체가 완성되기까지 보통 여러 기업을 거치게 됩니다.


크게 설계를 주로 하는 기업을 팹리스, 설계 최적화와 검사를 담당하는 기업을 디자인하우스, 제작을 담당하는 기업을 파운드리라고 부르죠.




물론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도 IDM 기업이 있긴 있습니다. CPU의 오랜 강자, 인텔입니다. 하지만 인텔도 모든 걸 혼자 하다 보니 힘에 부치긴 하는 모양입니다. 반도체칩은 더 작은 소자를 더 촘촘히 집어넣을수록 성능을 높일 수 있는데요. 2014년 이후 인텔은 몇 년 간이나 14나노 단위의 공정에 머물러있다 2019년이 되어서야 10나노 공정을 도입했어요. 7나노 공정 도입 시기도 자꾸만 뒤로 미루고 있고요.


TSMC와 삼성전자가 이미 7나노 공정에 들어선 데다 3나노 공정 계획까지 공언한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인텔은 최근 차세대 CPU의 생산을 TSMC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할 인텔이 아닙니다. 3월 24일,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본격 선언하면서 현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데요. 지금은 삼성과 TSMC에게 기술이 밀리고 있지만, 정부의 든든한 지원이 받쳐준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 겁니다.





떠오르는 파운드리 시장...TSMC가 ‘슈퍼을’로 불리는 이유는


그런데 잠깐. 인텔은 왜 팹리스에만 집중하지 않고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발표한 걸까요? 설계도를 직접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완성된 설계도를 받아 만드는 일종의 위탁생산업인 파운드리가 얼마나 매력적인 거기에, 인텔이 출사표를 던진 걸까요?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80년대 이전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도 팹리스와 파운드리라는 구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텔, 텍사스 인스투르먼트, NEC 등 1세대 반도체 기업들은 설계도 생산도 직접 했죠. 따라서 진입장벽이 매우 높았습니다. 지난 편에서 설명한 것처럼, 삼성전자도 이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쪽으로 방향을 정했죠.


그런데 그 때 한 기업이 등장합니다. 바로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대만 파운드리 기업, TSMC죠.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은 텍사스 인스투르먼트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앞으로 점점 더 반도체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걸 직감했는데요. 그는 “한 기업이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전담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도체 생산만 전담하는 기업이 있다면 다른 기업들은 설계에만 전념할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많은 기업들이 반도체 설계에 도전할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설계 기업들이 늘어난 만큼 생산 전담 기업의 수익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본 거죠.




이 새로운 기업 생태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모리스 창은 1985년, 대만으로 넘어가 2년 뒤 세계 첫 파운드리 기업 TSMC를 설립합니다. 당시엔 미국 기업들이 설계 기술력을 쥐고 있다 보니, 값싼 공장부지, 값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만엔 파운드리 기업이 딱이라고 본 겁니다.




그리고 현재. TSMC는 전 세계 반도체 공급의 50% 이상을 책임지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2020년엔 IDM기업 삼성과 인텔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기업 중 시총 1위를 차지했죠. 퀄컴, 엔비디아, AMD, 인텔 등 빅테크 기업들 모두 TMSC의 고객입니다. 특히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들도 반도체 설계에 뛰어들면서 파운드리 업체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현재 7나노 공정이 가능한 기업이 TSMC외엔 삼성전자밖에 없는데다 TSMC가 압도적으로 많은 공장을 가지고 있다 보니, TSMC의 독과점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반도체 시장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TSMC는 ‘슈퍼을’로 군림하게 된 거죠.



◇ 2021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온다? 반도체 빅사이클은 왜 생기나


그렇다면 최근 들어 자주 보이는 용어, 반도체 빅사이클은 대체 뭘까요? 반도체 빅사이클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적용되는 용어인데요. 메모리반도체(D램) 업체들의 역대 분기별 수익 지표를 한 번 보겠습니다. 그래프가 크게 3번에 걸쳐 오르락내리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이 주기가 바로 반도체 빅사이클입니다. 특히, 2017년에서 2018년에 걸쳐 찾아온 역대급 메모리 반도체 호황기는 슈퍼 사이클이라고 불렀죠.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건, 수요와 공급에 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인데요. 사전 주문에 따라 맞춤 제작에 들어가는 시스템 반도체와는 달리, 메모리 반도체는 일단 만들어 놓은 후 팔다보니 수요 예측이 어렵습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가정용 PC가 집집마다 보급되면서, 2012년부터 2014년에 걸쳐서는 전 세계가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면서, 그리고 2017년에서 2018년에 걸쳐서는 클라우드 업체들이 데이터 서버를 구축하면서 호황기를 맞았는데요. 수요가 급증하다보니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자연스럽게 올랐죠.


그럼 다음 호황기는 언제냐고요? 구체적인 시기에 대한 예측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5G 등 4차산업혁명이 본격화되는 시기가 다음 호황기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해갈수록 더 빨리 읽고,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가 더 많이 필요해질 테니까요.


그런데요, 메모리 시장에만 적용되던 반도체 빅사이클이 미래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도 적용될 것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급증하다보니 설계와 제작 간 속도 불균형이 일어난다는 건데요. 당장 자동차 시스템 반도체 부족 사태만 봐도, 주문량이 워낙 쏟아지다보니 TSMC가 가격을 15%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나섰죠.



◇ 커지는 시스템반도체 시장...고전하는 한국


누가 봐도 시스템 반도체, 정말 매력적인 먹거리로 보이지 않나요? 시스템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부품인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죠. 그런데 혹시, 우리나라가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 정도에 그친다는 거 기억나시나요?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또 기업 차원에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2020년 4월, 삼성전자 또한 ‘반도체 비전2030’을 발표하면서 생산시설 투자에 50조원, 연구개발(R&D)에 7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작년에만 평택 공장에 10조 투자해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추가 구축했죠. 10조는 삼성전자가 가진 현금의 10% 수준에 달해요.


그런데요,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동안 꾸준~히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키워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10년째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죠. 왜냐고요?



◇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승리 공식은?


우리나라가 잘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엔 미세공정과 대량 생산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해요. 미세공정을 위해선 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어야하고, 값비싼 설비들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해요. 대량 생산이 가능하기 위해선 생산 라인을 많이 만들고, 새로운 공장들도 지을 수 있어야 하죠. 즉,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이 유리한 영역이에요.




또 하나.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호황과 불황에 따라 가격이 요동치는 시장이다 보니, 불황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해요. 수요가 없을 땐 너도 나도 가격을 내려 조금이라도 재고 소진을 하려고 나서는데, 작은 기업들은 생산단가가 대기업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보니 이 기간을 버티기 어려워요. 실제로 초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업체는 20곳에 달했지만, 현재는 3곳밖에 살아남지 못했죠.





◇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핵심은 자본력보다 ‘인재’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어떨까요? 제조 파트에 해당하는 파운드리의 경우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과 비슷합니다. 초미세 공정이 중요하다는 점, 수주가 몰리면 그게 다시 기술과 자금력 강화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라는 점이 닮았어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를 모토로 파운드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TSMC에 비해서 규모가 한참 작긴 하지만 그 덕분에 삼성이 2위를 하고 있는 거기도 하고요.


하지만 팹리스의 경우는 완전히 달라요. 큰 자본력보다는 뛰어난 인재들이 필요한 곳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조에 비해 설계 능력이 많이 약한 편이에요. 배출되는 인력의 규모부터 차이가 커요. 미국에선 매년 5,000명, 대만에선 1,000명 가까이 전문 인력이 배출되고 있는데, 한국에선 연간 50명에 그치고 있죠.




그렇다보니 국내 팹리스 기업들의 설계인력은 선진국 대비 5% 수준에 그치는데요. 전 세계 팹리스 기업 순위 상위 50개 기업 가운데 국내 기업은 실리콘웍스 하나뿐이에요.


여기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경시 풍조가 한몫해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하기엔 투자금 유치가 쉽지 않거든요. 기술력과 성장성을 인정받아도 수백억 이상의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요. 이웃 나라 중국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유치하며 쭉쭉 성장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죠.


하지만 정부가 2030년까지 전문 인력 1.7만 명을 양성하겠다며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고,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비전 2030에 중소 업체들에 자체 개발 설계자산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포함했어요. 2030년까지 세계 팹리스 시장 10%를 점유하겠다는 한국의 계획. 성공할 수 있을까요?



자, 반도체 생태계의 기본 틀, 이제 눈에 좀 들어오시나요?

여기서 잠깐. 완벽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도체 산업에도 큰 변화의 물결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IT기업들이 직접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고, AI만을 위한 새로운 반도체칩(NPU) 개발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기업들이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인텔 역시 기존 방식을 뒤엎는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하겠다고 공언한 상태거든요.

알수록 흥미로운 반도체의 미래 이야기, 다음 편에서 깔끔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정민수 기자 minsoojeong@sedaily.com, 김현지 기자 loc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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