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 400년 전 책에서 구원을 찾다

■책꽂이-칠극
판토하 지음, 김영사 펴냄
명나라 최초 한문 천주교 교리서
'지혜문학'으로 조선에도 큰 영향
사도세자·박지원·정약용 등 탐독
교만·질투·분노·식탐·음란·나태
부정적인 마음 다스리는 법 제시
현대인들 수양서로도 손색 없어


"당신이 아들을 사랑한다면 덕을 물려주십시오. 재물과 복은 아울러 따라갈 것입니다. 재물을 물려주면 덕과 재물이 모두 위험해지지요. 재물이라는 것은 온갖 죄악이 담기는 그릇입니다. 어린 아들이 많은 재물을 끼고 있는 것은 마치 미친 사내가 예리한 칼을 지닌 것과 같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남을 해치는 것을 모두 면치 못할 것입니다."


400여 년 전 쓰여진 책 '칠극(七克)'에서 탐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설명한 구절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잠언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 이 책은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1571~1618)가 동방 선교의 꿈을 안고 1601년 명나라에 들어가 천주교 박해로 추방되기까지 19년 간 중국에 머물며 쓴 최초의 한문 천주교 수양서다.


당시 명나라에서는 물론 조선으로도 건너와 많은 이들에게 읽힌 이 책을 고전학자인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현대인들의 인생 수양서로 새롭게 펴냈다. 원문을 토대로 각종 판본과 번역서를 참고해 총 7권 분량의 책을 한 권에 담아냈다. 원문은 433면, 한자 8만2,590자로 '논어'의 7배, '맹자'의 2.7배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역자인 정 교수는 1614년 첫 출간된 이 책이 350년 뒤 마지막 판본이 나오기까지 꾸준히 출간되며 독자를 보유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이 책의 가르침이 주는 보편적 공감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칠극은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인간의 7가지 마음과 이를 극복하는 7가지 덕행을 담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7가지 죄는 교만과 질투, 탐욕, 분노, 식탐, 음란, 나태이며, 이에 맞서는 7추덕, 즉 중추가 되는 덕성은 교만에 맞서는 겸손, 질투를 이기는 인애, 탐욕을 없애는 관용, 분노를 가라앉히는 인내, 식탐을 누르는 절제, 음란의 불길을 식히는 정결, 나태를 깨우는 근면이다.


책은 마치 병증에 따라 처방을 내놓듯이 단계 별로 죄종의 성질과 속성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다양한 일화와 예시로 설명한다. '사자처럼 사납게 날뛰는 교만은 겸손으로 복종시키고, 파도같이 일어나는 질투는 용서로 가라앉혀라. 손에 꽉 쥐고 놓지 않는 탐욕은 은혜로만 풀 수가 있고, 치솟는 불길은 인내라야 끌 수 있다. 또 홍수처럼 휩쓰는 음란의 물결은 정결함의 방패로 막고, 지친 둔마 같은 게으름에 대해서는 부지런함이라는 채찍질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판토하는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제자백가서’를 읽는 느낌을 전해주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 그레고리오 등 중세 성인부터 아리스토델레스, 소크라테스 같은 그리스 로마 시대 철학자, 성경과 여러 성인들의 잠언, 심지어 여러 편의 이솝 우화까지 끌어와 설명하는데, 이 같은 전략은 당시 지식인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이들이 천주교를 이해하게 되는 길을 열어줬다. 천주교 교리서가 일종의 '서양인 수양서'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천주교 전교 활동의 일환으로 쓰인 만큼 책 곳곳에 종교적 색채도 강하게 드러난다. 식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불교의 윤회설과 인과응보설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이어가는가 하면 게으름을 논하면서 천당지옥설을 꺼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대중적으로 읽혔다는 사실은 판토하의 편집 능력과 전략의 뛰어남을 보여준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칠극은 조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대학자 성호(星湖) 이익(1681~1763)은 '이 책이 유가의 극기복례의 가르침과 다를 게 없고, 수양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며 높게 평가했다. 남인 학맥의 큰 스승이던 성호의 호평에 책을 접한 제자들 중에는 칠극에 깊이 매료된 이들도 속출했다.


다산 정약용(1762~1836)도 생애 전반에 걸쳐 이 책과 함께 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선중씨묘지명'에서 칠극 등의 서학서를 빌려 탐독했다고 고백했고, '취몽재기' '두 아들에게 써준 가계' 등 많은 글에서 칠극의 내용을 인용했다. 이외에도 연암 박지원(1737~1805)이나 조선 후기 다른 문장가의 글에서도 칠극에서 끌어다 쓴 비유나 표현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사도세자는 중국 소설의 삽화 중에 교훈이 될 만한 것을 묶은 '중국소설회모본'에서 '칠극'을 꼽기도 했다. 이 책이 신앙서가 아닌 일종의 수양서나 지혜문학의 일종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셈이다.


정 교수는 인간이 살면서 갖게 되는 수많은 물음에 궁극적 해답을 제시해줄 설득력 있는 내용들은 현대인들이 수양서로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며 일독을 권하고 있다. 그는 해제에서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의 무뎌진 가치 기준을 회복하고 균형 잡힌 삶의 자리를 돌아보는 차원을 넘어 통찰과 회오(悔悟)로 이끄는 힘 있는 정문일침이요, 죽비소리가 아닐 수 없다"며 "항목별로 점검목록을 두고 자신의 삶에 투영해 읽으면 몽롱하던 정신이 화들짝 돌아오고, 방향을 놓쳐 비틀 대던 발끝에 힘이 생긴다"고 적었다. 3만2,000원.



/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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