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비에 32조 쓴 삼성, 최대 6,400억 더 돌려받는다

■반도체 패키지 지원책 뭘 담았나
[세액공제율 6~10%p 확대]
R&D비용·시설투자비 稅 혜택↑
업계 요구한 최대 50%엔 못미쳐
[공장·설비 인프라 전폭 지원]
판교~용인 잇는 반도체벨트 조성
용지·용수 확보 등 난관 넘어야
[전문인력 3만6,000명 양성]
반도체 학과 정원 1,500명 확대
인센티브 없으면 인력탈출 뻔해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K반도체 전략’은 세제, 인력 양성, 자금 지원, 인프라 구축 등 민관이 동원할 수 있는 정책을 총망라한 ‘토털 패키지 전략’이다. 문재인 정부가 ‘동반 성장’ 정책 등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4년 넘게 이어진 가운데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 재편 논의가 숨 가쁘게 진행되며 정부도 뒤늦게나마 태세를 전환한 셈이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반도체 강국으로의 도약을 강력히 지원하겠다”고 밝힌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쫓기듯이 관련 대책이 나오면서 업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중국 ‘반도체 굴기’가 한창이던 지난 2019년 시스템 반도체 육성책을 내놓은 후 2년가량 팔짱만 끼고 있다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정책 후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며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 기반한 반도체 육성 정책을 선보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메뉴는 많은데 어제도 먹었던 반찬이 또 올라온 것 같다”며 “좀 더 화끈하고 통 큰 지원책이 아쉽다”고 말했다.


13일 정부가 공개한 K반도체 전략의 핵심은 올 하반기 적용 예정인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 관련 세액공제 확대다. 정부는 세제 항목에 ‘핵심 전략 기술’ 항목을 추가해 대기업과 중견기업 R&D 비용은 30~40%, 중소기업은 40~50%를 세액공제해주기로 했다. 기존 신성장·원천기술 항목 대비 신설 항목의 세액공제율이 10%포인트 높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관련 R&D로 5조 원가량을 투자할 경우 이미 납부한 세금에서 최대 2조 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도 기존 최대 6%(기본 3%+투자 증가분에 따른 추가 공제 3%)에서 10%(기본 6%+투자 증가분에 따른 추가 공제 4%)로 상향하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강점이 있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및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모두 첨단 장비 의존도가 높은 장치산업이라는 점에서 수천억 원의 추가 세금 환급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클린룸’ 건설 등의 인프라 투자를 제외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나 웨이퍼 생산 장비 도입 시 기존 세제 대비 3~4%포인트가량 높은 6~10%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가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 32조 8,915억 원을 투자했다는 점에서 이 중 절반가량이 핵심 전략 기술 항목으로 분류돼 최대 10%의 세액공제를 받게 될 경우 기존 세제 대비 6,400억 원의 세금을 추가 환급받게 된다.


또 중견기업의 반도체 시설 투자 관련 최대 세액공제율을 기존 8%에서 12%로, 중소기업은 15%에서 20%로 각각 상향하기로 했다. 이번 세제 혜택은 반도체 관련 업종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세액공제율 확대 정책이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는 만큼 대규모 신규 투자 유인책이 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구용서 단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업계나 전문가들은 반도체 세액공제율 수준을 최대 50%까지 요구했지만 정부 발표안을 보면 그 같은 요구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세액공제율 상향이 없는 것보다 낫겠지만 저 정도 수준의 세제 혜택으로 기업이 공격적 설비투자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시스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등 반도체 전 산업을 아우르는 K반도체 벨트 조성에도 나선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육성을 위해 판교를 ‘한국형 팹리스 밸리’로 조성하고 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의 트레이닝 센터(투자 규모 2,400억 원) 등을 국내에 유치해 반도체 공급사슬망(SCM)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반도체 인프라 구축을 위해 용인과 평택에 10년 치 반도체 용수 물량을 확보하고 반도체 기업의 전력망 구축 시 정부와 한국전력이 절반가량을 공동 부담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쓴소리를 내놓는다. 조중휘 인천대 멀티미디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SK하이닉스만 하더라도 주민 반발 등으로 용인과 이천 공장의 용수를 확보하지 못해 수년째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정부가 이번 K반도체 전략 발표만으로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이미 자체적으로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정부 정책이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지 또한 의문”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1조 원 규모의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 자금’을 신설해 최근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8인치 파운드리 업체 등에 1%포인트의 우대 금리를 적용한 자금 지원을 해준다는 방침이다. 또 반도체 학과 관련 정원을 150명 늘려 총 1,500명을 배출하고 학사 인력(1만 4,400명), 전문 인력(7,000명), 실무 인력(1만 3,400명) 등 총 3만 6,000여 명의 반도체 인력을 향후 10년간 양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외에도 국회와 논의해 반도체 특별법 제정 등으로 추가적인 규제 완화 및 인력 양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인력 양성책이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종선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반도체 인력 병역 혜택 폐지 등 관련 인재 육성 정책에 손을 놓으며 수년 전 서울대 전기공학부 대학원 정원 미달 사태 등이 발생했다”며 “대만의 경우 TSMC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에 ‘국운’을 건 느낌인데 우리는 아직 구색 맞추기 수준의 대책에 머무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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