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찰 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 비위 사건 가해자의 88%가 경위 이상의 간부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어떤 조직보다 높은 수준의 준법 의식을 갖춰야 할 경찰에서 오히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경찰조직 내 성비위 징계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성 비위로 징계 받은 경찰관은 총 42명으로 전년 27명에 비해 5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계급별로 살펴보면 42명 중 경위(21명)와 경감(14명) 등 경위 이상 간부급이 37명으로 전체의 88%에 달했다. 특히 이들 경위 이상 간부의 성 비위 징계 건수는 2019년 19명에 비해 1년 새 두 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경찰 전제 성 비위 징계 건수는 간부급이 저지르는 성 비위에 따라 증감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경찰 조직 내 성 비위 사건 10건 중 9건이 간부급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찰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에 노출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경위와 경감은 일선 경찰서와 지구대에서 계장·팀장이나 지구대 순찰팀장을 맡는 관리자 계급이다. 일선 현장 경찰관과 직접 마주하며 관리해야 할 간부들의 뒤처진 성 인지 감수성으로 성 비위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달에도 인천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A 경위가 부하 직원들과 회식을 한 뒤 귀갓길에 여경을 성추행한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남의 한 경찰서 소속 B 경정도 여경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하고 음주 후 문자를 보내는 등 수차례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대기 발령 조치됐다. 이은주 의원은 “일선서와 지구대의 관리자급인 경위와 경감의 성 비위 비중이 높다는 건 경찰 내에서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며 “개인의 일탈을 넘어 경찰 조직 전체의 성 인지 감수성이 매우 떨어져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고되지 않은 경찰 조직 내 성 비위도 많다는 점이다. 특히 피해자 분리·보호 조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신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피해자 보호조치가 적극 시행되지 않으면 피해자는 피해를 감내하며 신고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여경은 “피해자가 신고하는 순간 조직 내에서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며 “이런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경찰 간부들의 성 비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진급 심사 시 성 인지 감수성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경찰 내 남성 우월적인 문화가 원인”이라며 “진급 심사에 성 인지 감수성 정도를 평가하고 교육하는 과정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의원도 “성차별적 조직문화부터 개선에 나서야 하고 가해자에 대한 공정한 처벌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도 방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