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관에 들어서면 두 개의 초상화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노란 바탕의 얼굴 위에 꽃 모양 선글라스와 뒤집힌 아이스크림으로 눈과 코를 붙였다. 익살스러운 캔버스 옆엔 라이트 패널 위에 그린, 자유분방한 선이 돋보이는 노인의 만화 초상이 붙었다. 사뭇 다른 두 작품은 각각 미술 작가 주재환의 ‘호민의 초상’과 웹툰 작가 주호민이 그린 ‘주재환의 초상’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담아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8월 1일까지 서소문본관에서 선보이는 전시 ‘호민과 재환’은 이렇듯 닮은 듯 다른, 다르지만 많은 것을 공유한 두 부자(父子)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호민과 재환’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이슈를 재치 있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망해 온 미술작가 주재환과 한국 신화를 기반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해석한 웹툰 ‘신과 함께’로 유명한 주호민 부자의 2인전이다. 두 사람은 미술과 웹툰이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일상·한국적인 소재로 우리 사회를 담아내는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발휘해 왔다. 이번 전시는 이들이 공유하는 이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가 세대를 거쳐 어떻게 진화하고 매체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지를 살펴본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시관 2층과 3층을 관통하는 주호민의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다. 가로 220cm 세로 740cm의 이 그림은 주호민 작품 속 캐릭터들이 계단을 배경으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한 것으로 주재환의 대표작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만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2’(1912)를 패러디한 것으로, 뒤샹이 표현한 내려오는 형상을 오줌 줄기로 대체해 미술계를 포함한 사회의 권력과 위계질서를 풍자했다.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주재환의 작품이 소개된 2층에서 시작해 주호민의 작품을 볼 수 있는 3층으로 이어지며 부자의 세계를 연결한다.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오줌 줄기의 ‘하강 이미지’를 표현한 것과 달리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캐릭터들이 계단에서 서로를 끌어 올려주는 ‘상승의 이미지’를 시각화해 대조를 이룬다.
전시에서는 두 사람이 주재환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주재환 월드컵 16강’ 영상도 볼 수 있는데, 거침없는 아버지의 입담에 쉴새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주재환 작가는 “(전시 작품 중) 호민이 누워 있을 때 본을 떠서 쇼핑백으로 만든 것도 있고, 청량 음료 사오라고 해서 그 병으로 만든 것도 있다”며 “내 작품은 호민이가 많이 도와줬는데, 이렇게 인연이 되어서 같이 전시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소감을 밝혔다. 주호민 작가 역시 “이번 작업이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엄청 부담스러워 도망가려고도 했다”며 “매체는 다르지만, 작업할 때 아버지께 많은 영향 받아온 것 같고, 앞으로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참고로 주재환이 그린 ‘호민의 초상’에는 재밌는 반전이 있다. “우연히 만든건데 나중에 보니 호민이를 닮았더군요. 그래서 호민의 초상으로 바꿨지. 다 인연이 있나봐요.” 옆에 선 아들이 허탈한 듯 말했다. “이렇게 해야 하는데, 저는 마음 먹고 그리다보니 재미도 없고, 늙어보이고…”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