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핵 폐기 로드맵 없는 동결-보상 ‘단계적 딜’ 안된다

2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 조율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4국 협의체인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부분 참여와 대기업의 대미 투자를 앞세워 미국으로부터 코로나19 백신과 대북 정책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을 어느 정도 수용해 북핵 정책에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외교부는 “대북 정책과 여타 현안 연계를 검토한 바 없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에서 단계적 해법으로 가닥을 잡음에 따라 살라미식 북핵 동결과 대북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미국을 직접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에 주력하고 단계적 북핵 동결로 간다면 북한의 핵 보유는 기정사실로 굳어지게 된다.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핵 폐기 의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제재 완화 등을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 측에 알리고 정상회담에서 이를 관철해야 한다. 북한이 핵 폐기 의지를 보여주려면 북핵과 관련된 모든 시설·물질 신고와 검증 일정을 담은 핵 폐기 로드맵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미국이 섣부르게 보상 방안부터 제시한다면 외려 북한의 오판을 초래할 수 있다. 북이 핵 폐기 로드맵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다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스냅백’ 조항도 포함돼야 한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자유·인권 등을 공유하는 가치 동맹을 회복하고 안보·경제 분야의 실질적 협력을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 북핵 문제에서도 ‘동결’이나 ‘포기’가 아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폐기’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임기를 1년 앞둔 정권이 ‘북한 중독증’에 빠져 이벤트에 집착하며 북핵 폐기 원칙에서 한 발짝이라도 물러선다면 한반도의 평화 체제 정착은 더 멀어진다. 우리가 머리에 핵을 이고 사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두루뭉술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와 ‘핵 폐기 로드맵’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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