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소개’의 순간을 숱하게 경험한다. 내가 소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를 또 다른 이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낯선 만남은 종종 새로운 사건의 시발점이 되곤 한다. 스쳐 지나가는 한낱 일회성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사랑과 증오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소개의 순간에는 기대와 긴장, 불편과 불안이 교차한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소개하는 파편 같은 단어 몇 개와 모호한 눈빛, 움직임 등을 통해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작품이자 제71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인트로덕션(introduction)’은 바로 이 ‘소개’의 순간에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복잡한 분위기를 ‘홍상수 스타일’로 잡아낸다. 6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 3개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영호(신석호)가 한의사 아버지(김영호)의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한의원으로 찾아갔다가 아버지 대신 간호사(예지원)를 만나는 이야기, 독일로 공부하러 간 영호의 여자친구 주원(박미소)이 현지에서 엄마(서영화)와 엄마 친구(김민희)를 만나고, 헤어진 지 하루 만에 독일로 따라온 영호와 재회하는 이야기, 그리고 영호가 엄마(조윤희)의 전화를 받고 친구(하성국)와 함께 대배우(기주봉)를 만나는 이야기다. 작품은 남녀 만이 아니라 부모 자식 관계까지 다룬다.
홍 감독의 전작 ‘도망친 여자’ 처럼 ‘인트로덕션’의 이야기들도 분절된 듯 묘하게 연결돼 있다. 감독이 힌트 하나 제대로 주지 않는 탓에 관객은 이야기 사이의 연결성을 찾느라 무덤덤한 화면과 등장 인물의 대화에 힘 들여 집중해야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각 인물의 사연이나 관계를 명쾌하게 알아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다. 타인의 과거를 명확하게 추론하는 일도, 함께 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뿐이다. 5월 27일 개봉.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