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 시간) 미국 증시는 예상을 밑도는 주택착공 건수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지속하면서 하락했습니다.
이날은 미국의 대형 마트인 월마트와 백화점 메이시스가 전망을 웃도는 호실적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메이시스 주가는 소폭 하락 마감했지만 월마트는 2% 넘게 올랐죠. 이들 업체는 백신을 맞은 고객들이 돌아오고 있다며 올해 실적도 좋을 것으로 내다봤는데요.
그런데 이날 미국의 소비 열기가 갈수록 식을 수 있다(cool off)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언뜻 지금 상황과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무슨 얘기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코로나19 이후 1차 1,200달러와 2차 600달러, 3차로 1,400달러 등 총 3,200달러의 현금을 지급받았습니다. 특히 지난 3월 받은 돈으로 적지 않은 이들이 소비를 늘렸는데요. 예상을 웃돈 실적을 낸 월마트의 더그 맥밀런 최고경영자(CEO)도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쇼핑을 하고 싶어한다”며 “경기부양책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금 지급이 앞으로는 없을 것이라는 점인데요.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인 핌코의 티파니 윌딩 선임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블룸버그TV에 “이같은 부양책이 분명히 수요를 늘렸다고 생각한다”며 “이에 소매상들은 가격을 올렸고 시간이 흐르고 (소비자들이 정부로부터) 돈을 더 받지 못하게 되면 이들은 보다 정상적인 소비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그는 “소매상들이 가격을 올리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든다”며 “공급 병목현상은 결국 해결되겠지만 앞으로 몇 달 동안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비 열기가 갈수록 약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윌딩 이코노미스트의 얘기는 직관적입니다. ‘물가상승→구매력 감소→수요축소→소비증가세 감소’가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죠.
이미 미국의 4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월가에서 0.8% 증가할 것이라고 봤는데 보기 좋게 예측이 빗나갔습니다. 당초 3월은 전달과 비교해 9.8% 늘었다고 봤던 것이 이번 발표 때 10.7%로 상향 조정됐는데도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4.2% 올랐습니다. 핌코가 예상하는 그림입니다.
미국은 소비가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합니다. 소비 없이는 경제도 없습니다. 물가상승이 소비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경제성장률도 일정 부분 타격을 받게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따져봐야 할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미국 가계에는 쓸 돈이 없느냐는 거지요.
잘 알려진 대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미국 가계의 1분기 저축률은 연환산 기준 21%에 달합니다. 이는 역대 두 번째 수치로 코로나19 초기를 제외하고 가장 높습니다. 미국 가계가 수조 달러의 돈을 들고 있다는 말입니다.
불황이 찾아오고 미래가 불확실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돈을 모아두기 마련입니다. 언제 실직할지 모르고 의료비로 목돈을 지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백신접종이 크게 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가계의 평균 저축률은 6%에 불과했습니다. 버는 족족 쓰는 나라입니다. 이제 다시 경제가 정상화한다고 보면 과거 습관(?)대로 모아둔 돈을 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적지 않은 가구가 정부 지원금을 신용카드와 학자금 대출 같은 빚을 갚는데 썼지만 이는 그만큼 다시 돈을 빌려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는 의미가 됩니다. 마켓워치는 “정부는 1분기에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2,000달러의 수표를 보냈다”며 “경제학자들은 지금처럼 상황 개선이 이뤄지면 앞으로 6개월 안에 여윳돈을 모두 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앞으로 경기가 빠르게 좋아질 수 있다. 가계가 저축해둔 돈을 쓴다면”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월마트와 함께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내놓은 제프 지넷 메이시스 CEO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부진했던 의류와 신발, 핸드백이 되살아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우리는 이것이 일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역학 구도에는 변수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임금입니다. 높아진 기대 인플레이션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수요가 더 커질 수 있겠죠. 이는 소비 증가로 이어집니다.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2025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2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앞서 치폴레와 맥도날드 같은 음식점을 비롯해 마트와 소매업체의 임금인상이 확산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임금인상이 기업의 비용증가로 이어져 물가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고 이는 티파니 월딩 핌코 이코노미스트의 말처럼 구매력 감소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는데요. 실질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향후 발표되는 인플레와 소매지표를 보면 좀더 뚜렷해질 겁니다.
지금 시점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경제활동 재개에 소비가 계속 강세를 띌 가능성이 높지만 ① 현금지급 중단과 물가상승에 소비열기가 줄어들 수 있다 ② 다만 가계저축을 쓰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③ 임금인상은 수요증가와 함께 인플레도 가열시킬 수 있으며 인플레는 다시 구매력을 줄일 수 있다 등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중 하반기로 갈수록 소비열기가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은 앞으로 경기를 볼 때 새로 감안해둘 부분입니다. 또 임금인상이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불러올지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어쨌든 조 바이든 행정부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강하게 지원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도 그렇고 이날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노동자들의 임금 불평등은 부분적으로 노동조합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틈만 나면 언급하는 부분인데 그의 국정목표인 중산층 재건을 하려면 노동자 처우가 나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조가 핵심이라는 논리입니다. 정부가 임금협상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지만 직간접적인 압력을 통해 이런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죠. ‘3분 월스트리트’에서 계속 설명드리지만 당분간은 인플레와 소비, 임금 등의 지표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