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사회연대특별세를 시작으로 여권의 ‘부자 증세’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자 증세를 이어온 가운데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나타내지 못하면서 이를 명분으로 기업과 고소득자를 정조준한 ‘증세 드라이브’를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과 외연 확장을 위해 고소득자와 기업의 이익을 걷어 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전형적인 ‘갈라치기’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표가 적은 소수의 세금은 크게 올리고 표 많은 다수에게는 ‘올리지 않는다’며 영합하는 이른바 ‘세금 정치’가 본격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의원은 18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대선 주자들이 모두 복지 확대를 주장해 돈 쓸 곳은 늘어나는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관한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고 있다”며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관련법은 소득세와 법인세에 1,000분의 75(7.5%)씩 납부하도록 하는 한시적 목적세를 도입해 코로나19로 손실을 본 취약 계층에 지원된다. 전형적인 부자 증세 법안인 셈이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부동산 정책 전환에 나선 여당이 종합부동산세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한도 조정보다 재산세 완화에 보다 적극적인 것도 ‘세금 정치’의 일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 달 1일이 재산세와 종부세 과세 기준일이라 빠른 속도로 보완하겠다는 것이 목표지만 궁극적으로 종부세 납부 대상에 비해 6억 원 이하 1주택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다. 실제 전국 공동주택의 92.1%가 6억 원 이하다. 재산세 감면 대상이 공시가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확대될 경우 아파트 59만여 가구가 혜택을 보게 된다. 현 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꼽히는 부동산 정책이 재산세 완화 ‘한 방’으로 덮일 수 있는 파급력을 가진 셈이다.
세금 정치는 내년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여권 대선 주자들이 복지 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재원 조달에서는 구체성이 떨어진다”며 “결국 증세가 불가피한데 부자 증세라는 프레임까지 씌우면 선거 구도는 여권에 유리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여당 의원들이 ‘부자 증세’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며 증세에 불을 댕기는 데는 결국 내년 대선 승리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코로나19 피해가 급증하고 다양한 사회적 요구로 복지 정책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부담이 큰 ‘보편 증세’가 아닌 ‘부자 증세’를 통해 세금 정치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다. 특히 정치권 곳곳에서 현금성 복지 정책이 거리낌 없이 나오면서 소수인 고소득층과 기업을 압박해 다수인 서민과 청년층 등의 표심을 사로잡겠다는 꼼수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부자 증세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한편 현금 살포로 외연 확장에 나서며 대선 승리를 이끌겠다는 노림수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 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현금성 복지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정세균 전 총리가 잇달아 현금성 공약을 내놓으면서 증세와 현금 살포가 맞물려 포퓰리즘 논란까지 점화되는 양상이다. 이 전 대표는 ‘제대 의무 복무 군인 3,000만 원 통장’, 이 지사는 ‘고졸자 세계 여행비 1,000만 원’, 정 전 총리는 ‘사회 초년생 1억 원 통장’을 내세워 민주당에 등을 돌린 청년층 표심 공략에 일찌감치 착수한 상태다.
대선 주자들의 현금 살포 공약에 필요한 재원은 여당 의원들이 법안 발의를 통해 지원하는 모습이다. 전날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사회연대특별세는 소득세와 법인세에 1,000분의 75(7.5%)씩 납부해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사회연대특별세를 신설할 경우 내년 1조 원을 시작으로 2022~2025년까지 총 18조 3,000억 원(연평균 4조 6,000억 원)의 세수가 증가할 것으로 추계됐다. 사회연대특별세 납부 대상은 근로소득 및 종합소득 과세표준 1억 원 이상의 고소득자로 약 57만 명에 이른다. 법인의 경우 2019년 신고 기준 103개로 이는 전체 법인세 신고 법인의 0.03%에 불과하지만 총부담세액을 기준으로는 전체 세액의 50.7% 수준이다. 법인세 과세표준 3,000억~5,000억 원 기업은 법인당 평균 약 60억 원, 5,000억 원 이상 기업은 법인당 평균 약 370억 원의 세 부담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장경태 의원이 발의한 ‘청년세법’ 제정안도 전형적인 ‘부자 증세’ 법안이다. 법인의 연간 소득에서 1%를 청년세로 걷어 청년 일자리 사업 등에 쓴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법인세를 1%포인트 인상하는 것이다. 강병원 의원의 경우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당류가 들어간 음료수를 제조·가공·수입하는 회사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으로, 이 역시 기업에 국민 건강 책임을 부과해 세수 확보에 나서는 셈이다.
아울러 기업의 코로나기금 참여와 이익 공유를 압박하는 ‘상생법(손실보상법·협력이익공유법·사회연대기금법)’은 코로나19를 명분으로 한 ‘기업 옥죄기’의 대표적인 법안으로 꼽힌다.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 간의 상생을 목표로 한 협력이익공유법이나 코로나19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사회연대기금법안에 대해 경제계는 시장경제 원리에 위배될 뿐 아니라 주주 재산권 침해 등의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했지만 여당은 국회 통과를 벼르고 있다.
전날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간담회를 가진 20대 대학생들이 “더는 현금 공약에 속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표심을 얻기 위한 포퓰리즘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특히 증세 법안 대부분이 표면적으로 ‘상생’을 내세우고 있지만 ‘표 작은 소수에게는 세금을 크게 올리고 표 많은 다수에게는 ‘안 올린다’고 영합하는 식’이라는 점에서 갈등을 노골화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선거 득실에 따라 고소득층과 기업에 증세를 하고 현금은 청년층을 겨냥하거나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면 세제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너질 수 있다”며 “코로나 손실보상처럼 찬반 의견이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