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순탁 “논문 위주 대학, 생존 장담 못해… 빅데이터·AI로 도시 문제 해결해야” [청론직설]

◆서순탁 서울시립대 총장
인구 절벽·재정난으로 서울 지역 대학들까지 위기 심화
변화 둔감해 정부 가이드라인에도 미치지 못할 때 있어
논문 질적 평가·융복합 연구 통해 사회적 책임 다해야
환경·안전·교통·양극화 등 도시 문제 해법 적극 모색
몽골 캠퍼스 설립 협의 중…어렵지만 ‘윈윈’ 방안 추진

서순탁 서울시립대 총장이 1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시립대


“인구 급감과 재정난으로 소위 ‘인 서울 대학’도 중장기적으로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논문 양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회와 유리된 측면이 있어요. 서울시립대는 학내외 융복합 연구를 통해 도시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으려 합니다.”


도시 행정 전문가인 서순탁(62·사진) 서울시립대 총장은 1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이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고 사회에서 유용한 과학기술을 연구개발(R&D)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대학들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한 것은 틀림없지만 아직 교육 혁신이 미흡하고 논문도 양적 평가에 그치며 융합 연구, 산학 협력, 성장 동력 확충도 갈 길이 멀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는 “대학이 변화에 둔감하고 거버넌스도 복잡해 힘 있게 혁신을 밀어붙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논문 위주 대학에서 벗어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으로 도시 문제 등을 해결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이 급변하는데 대학이 여전히 논문 위주의 문화에 빠져 사회와 유리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동안에는 교육과 연구 혁신, 사회와의 접점 모색에 주안점을 둬왔다. 연구 측면에서 보면 많은 대학의 문제는 논문을 평가할 때 양적으로 해왔다는 점이다. 질 높은 연구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한 명이 연간 수십 편씩 논문을 쏟아낼 수 없는데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평가를 어떻게 바꾸는 게 좋겠나.


△논문을 위한 논문, 특허를 위한 특허는 곤란하다. 대학이 순수 과학과 기초연구를 끊임없이 수행하면서 실생활과 기업에 필요한 실용적인 연구를 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서울시립대가 강한 도시 과학 분야는 현장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어떤 대학 총장은 ‘대학에 김 작가, 이 작가, 박 작가가 많다’는 얘기를 하더라. 논문을 많이 써내 총장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 교수도 있다. 오죽했으면 ‘SCI 망국병’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작가도 그렇게 글을 쓰면 좋은 작가가 못될 것이다(웃음). 학문별로 특성 차이가 작지 않은데 양을 기준으로 업적 평가가 이뤄지는 실정이다. 논문 내용의 우수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학술지에 논문이 등재됐는지 여부를 본다. 다른 연구자들이 얼마나 논문을 인용했느냐를 보는 ‘임팩트 팩터’가 중요한데 실상 이마저도 객관성 논란이 있다. 정성 평가를 고려해 계열별로 차별화하며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학이 세상의 변화에 참 둔감하다는 지적이 많다.


△아직 언론이나 정부 등이 논문의 양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는 논문 수에다 임팩트 팩터를 고려해 연구 지원금을 주는데 앞으로는 질적인 평가를 더 중시하면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정부와 한국연구재단 등이 기술 동향, 학문 특성, 미래 전망을 감안해 방향을 정하고 교수들이 선도 연구를 하며 좋은 논문을 써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물론 연구재단이 이런 방향으로 선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대학이 충분히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정부의 R&D 예산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성과가 평균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 아닌가.


△정부가 올해 27조 원이 넘는 R&D 예산을 대학, 정부 출연 연구원, 기업 등에 지원하는데 성과는 국민의 기대에 비해 미흡하다. R&D의 효율성은 형평성보다 수월성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R&D 예산을 잠재 역량이 큰 곳에 더 줘야 하는데 지금은 나눠주고 있다. 물론 학문 영역과 지역별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데 간혹 정치 논리가 개입되는 경우도 있다.


-1990년대 초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신설됐는데 학령인구 급감으로 구조 조정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일단 특성화를 통해 차별화를 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서울 등 수도권도 예외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지방대는 재정의 상당 부분을 외국인 학생들에게 의존해왔다. 학비가 매우 저렴한 시립대는 국내·외국인 학생들로부터 동일한 수준의 학비를 받고 있는데 다른 대학들처럼 외국인 학생들의 학비를 좀 더 올려 받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는 수도권 대학도 무풍 지대에 머물 수 없다. 대학들이 각각 특성화해야 하고 수도권과 지방 대학들이 협력해야 한다. 독특하고 차별화된 기반을 구축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글로벌 시대에 세계 대학과 경쟁할 수 없다. 시립대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70개국 560개 대학과 체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가속화에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대학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미네르바스쿨이라든지 대안 학교도 갈수록 각광을 받고 있는데.


△시립대는 코로나19 이후 다른 대학처럼 온라인 위주의 학습을 하고 있다. 외국 학생도 자국에서 수업을 받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고 있다. 졸업식·입학식 때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로 가상 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해 하는 이벤트를 여는데 앞으로는 교육과정에도 이런 기법을 도입하게 될 것이다. 미네르바스쿨은 온라인으로 토론식 수업을 하고 서울 등 세계 7개 도시를 다니며 실용적 연구를 한다. 시립대도 현장 실습과 인턴 체험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려 한다. 최근 서울대가 자체 코로나19 검사를 하며 대면 강의로 방향을 돌렸는데 그 부분도 유심히 보고 있다. KIST와의 학연 교수제도 추진하려고 한다. 학연 교수제는 국책 연구소와 대학 간 공동 연구 및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다.






-시립대도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을 위해 공과대를 더 키우고 기술 사업화에도 나서야 할 텐데.


△창업과 기술 이전 등 기술 사업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최진희 환경공학부 교수가 정부의 ‘분자독성 네트워크 기반 환경성 질환 예측 모델 개발’ 과제를 수주하는 등 시립대에서 점차 공과대의 비중이 커지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 시립대 기술 지주 자회사로는 고창의 고구마로 항균 비누와 항노화 화장품을 개발하는 회사 등 3곳이 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 물론 축광식 광촉매를 연구하는 김정식 교수 등이 외부에 기술 이전도 하고 있으나 활발하지는 않다. 창업교육센터에서 창업 동아리도 지원하고 외부 3곳의 창업보육센터도 운영하며 학내외 스타트업 지원에도 나서고 있으나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최근 정부의 ‘디지털 신기술 인재 양성 혁신 공유 대학’ 공모에서 AI와 빅데이터 2개 분야에서 서울대 등 다른 대학과 함께 컨소시엄을 이뤄 선정돼 고무적이다. 시립대는 AI와 빅데이터 인재 양성을 위해 2019년 도시 과학 빅데이터·AI연구소를 열고 지난해 AI학과를 비롯해 대학원에 도시빅데이터융합학과·스마트시티학과를 만들었다. 공공 의료 인력을 키우기 위해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의대 설립은 아직 여의치 않다.


-시립대가 몽골에 캠퍼스 설립도 추진하던데.


△대학 교육도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시립대에도 몽골 등 외국 출신 학생들이 많은데 총장 취임 이후 몽골에 글로벌 캠퍼스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대기 질이나 교통·주거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아 현지에 대학을 설립해 인재를 키우고 공동 연구를 하려는 것이다. 황사 발원지인 몽골에서 관련 기술 인력과 도시 전문가를 키우면 한국과 ‘윈윈’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다만 200억 원가량의 예산이 들어 몽골 측에서 땅만 제공할 테니 건물 짓고 학비 받아 학교를 운영하라는 입장이어서 어려움이 있다. 쉽지는 않지만 기부나 다른 대학과의 공동 추진 등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서울시립대의 도시과학 빅데이터·AI연구소는…]



서순탁 서울시립대 총장이 2019년 공약 1호 이행 차원에서 설립했다. 기후변화와 환경·교통·안전 문제 해결과 전통 시장 활성화 등 차별화된 도시 과학 연구에 집중한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정책에 응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서울시의 방대한 공공 데이터와 신용카드·교통·통신 등 민간 데이터를 합쳐 시장 빅데이터를 구축해 상권 활성화를 모색하는 방식 등으로 진행된다. 이 연구소는 강남구·송파구와 협업하고 있고 국토연구원·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등과도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


시립대는 해외 우수 인력을 4~5명 초빙하고 교내에서도 AI·빅데이터 분야 교수 40~50명 등의 융합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조만간 오세훈 서울시장을 초대해 개소식을 열 계획이다. 서 총장은 “복잡계 분야의 연구를 하는 미국 샌타페이연구소, 스탠퍼드대와 MIT 연구소도 참고했는데 대학에서 연 15억 원씩 지원하지만 단기에 논문이나 특허를 내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힉스입자를 연구하는 박인규 교수와 양자컴퓨팅 전문가인 안도열 석좌교수 등 도시, 통계, 컴퓨터, 경제, 환경, 교통, 인문학, 물리학, 공학, 예술·체육 등 학제를 뛰어넘어 융합 연구를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앞으로 2년만 더 시스템을 구축하면 최고 수준의 컴퓨팅파워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He is…


1959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뉴캐슬대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토연구원을 거쳐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무처장과 도시과학대 학장을 역임했다. 한국도시행정학회장, 국토학회 학술지인 ‘국토’ 편집위원장과 국제 학술지 ‘도시과학’ 수석 에디터 등을 지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 정책위원장으로도 일했다. 2019년 직선 총장으로 당선돼 3년째 총장을 맡아오며 시대 정신과 미래 가치를 선도하는 대학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교육 혁신과 빅데이터·AI 기반의 도시 과학 해법 마련에 나서고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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