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동대문도서관이 마련한 온라인 강의실. 서울 광남고등학교 학생들이 하나 둘 입장하더니 어느새 70여명의 학생들의 얼굴이 온라인 화면을 가득 채웠다.
‘원작과 함께 영화 읽기’ 강의를 맡은 최은 영화평론가는 이날 제인 오스틴의 원작 ‘오만과 편견(1813)’과 톰 후퍼 감독의 영화 ‘오만과 편견(2005)’을 함께 보며 해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만과 편견’을 책이나 영화로 본 사람 있어요”라는 최 평론가의 질문에 “봤어요”라는 학생들의 대답이 온라인 채팅창에 줄을 이었다.
최 평론가는 “제인 오스틴은 총 일곱 편의 중·장편 소설을 남겼는데 모두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만과 편견’에는 제인 오스틴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있다”고 말하며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영화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의 절친 샬롯에게 청혼을 한다. 청혼을 받아들인 샬롯을 보며 엘리자베스는 실망한다. 가난한 부모의 짐만 되는 27세 노처녀 샬롯은 마지막일 수 있는 결혼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것. 결혼 후 샬롯은 엘리자베스를 집으로 초대한다. 집안에 들어선 엘리자베스는 샬롯이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콜린스와의 결혼생활이지만 샬롯은 그 안에 남편 콜린스가 끼어들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며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최 평론가는 “제인 오스틴도 샬롯처럼 27세에 해리스 빅 위더라는 남성에게 청혼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면서 사실상 비혼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하고 “청혼을 거절한 본인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면 작품 속 샬롯을 불행하게 표현할 만도 하지 않나요”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저라면 불행하게 만들 것 같아요” 라는 학생들의 대답이 채팅창에 이어졌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은 작품 속 샬롯에게 그녀만의 공간을 마련해 주며 현실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이겨내는 모습을 그렸다”고 말하며 최 평론가는 “당시 남성중심의 사회제도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에 대한 제인 오스틴의 따뜻한 위로의 시선이 지금까지도 영화와 드라마로 재해석 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동대문도서관이 마련한 최 평론가의 ‘원작과 함께 영화 읽기’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이 날 강의에서 학생들의 질문과 답변은 시종일관 온라인 채팅창을 뜨겁게 달궜다. 김민정 광남고 사서교사는 “고전문학을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영화와 엮어 해석해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것 같다”며 “학생들이 책을 더 가까이하는 기회가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인돌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