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이 LH 쇄신? 엉뚱한 해법에 민관 모두 '갸우뚱'

지주사 전환해 조직원 감시 강화 추진
"삼성은 지주사라 내부관리 강한가"
신용등급 강등돼 이자비용 오르고
다양한 비효율 발생해 쇄신 '역행' 지적

LH 진주 본사 사옥앞에 빨간색 신호등이 켜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임직원 투기 의혹을 받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쇄신안으로 지주회사 전환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지주사로 전환한다고 해도 이번 사태의 본질적 원인인 비대한 사업권한과 정보 독점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어서 자칫 비효율만 키우는 엉뚱한 해법이 제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1일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당정 협의를 거쳐 다음 주 중 ‘LH 조직 혁신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LH 투기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 만이다.


현재 거론되는 방안은 △LH를 기능별로 쪼개 지주사가 임대주택 공급을 맡고 별도 2개 자회사가 토지공급과 주택 건설을 각각 맡는 방식과 △LH의 100% 자(子)회사인 주택관리공단에 임대주택업무를 이관한 뒤 이 기관을 분리해 LH의 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구체적 방법론의 차이는 있지만 임대주택 공급을 맡는 사업지주회사를 두고 그 아래 자회사를 둔다는 점에서 큰 틀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 겸 LH 사장이 올해 초 열린 부동산 점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서울경제 DB

①땜질식 쇄신= 문제는 이 같은 지주사 전환이 본질적 쇄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민간과 학계는 물론 지주회사 설립법을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전직 공정위 관료는 “지주사로 전환한다고 해도 정보독점, 비대한 사업권한 등의 근본적 문제는 울타리 안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며 “결과물을 내놓으라는 여당의 압박과 이반된 민심에 어떤 식으로든 ‘조직 해체’라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지주사 전환 카드를 꺼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도 “임직원에 대한 감시 기능이 필요하다면 과거 삼성의 구조본(구조조정본부)과 같은 조직을 두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며 “뒤집어서 보면 삼성은 지주사가 아닌데도 ‘관리의 삼성’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내부 관리가 철저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지주사로 전환한다고 해서 제2, 제3의 비리가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②신용등급 강등 우려= 지주사 전환에 따라 경영상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현재 우리나라 지주사는 자회사들로부터 영업현금흐름을 직접 받을 수 없고 브랜드수수료, 경영컨설팅비, 대여금에 대한 이자 등의 명목으로 현금을 걷어 자체 사업에 써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방식으로 지주사 체제가 완성될 경우 토지 및 건축 담당 자회사들은 각종 명목의 요금 체계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상당한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예를 들어 브랜드 수수료를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적정 요금이 얼마인지를 검토하고 이를 다시 외부에 검증하는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조직이 생기는 등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주사 전환 이후 공사채 이자 비용이 오르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무디스 기준 LH의 현재 독자 신용등급은 정크(투기) 등급인 ‘Ba3’이지만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포함해 최종적으로 ‘Aa2’의 우량등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주사 전환 이후에는 지주사와 자회사들이 모두 별도 신용등급을 부여 받아야 한다. 통상 지주사들이 자회사보다 1등급 낮은 신용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국제 회사채 시장에서 높은 금리를 요구 받을 가능성이 있다. LH는 지난해 11월 3년 만기 미국채 금리에 0.48% 포인트를 가산한 0.625%에 3억 달러 채권 발행에 성공했으나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앞으로는 가산 금리가 더 높아질 수 있다.




③신사업 확장도 걸림돌= 지주사 전환에 따라 불필요한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받게 되는 것도 쇄신방안의 맹점 중 하나다. 가령 LH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해외 사업을 위해 외국 기업과 합작 기업을 설립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규제에 따라 사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를 둘 경우 지분을 100% 소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공기업은 지난 2016년 상호출자 제한을 받는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돼 현재는 이런 규제에서 벗어나 있지만 향후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규제가 다시 강화될 수도 있다. 실제 공기업 성격이 큰 농협도 출자제한 등의 규제를 현재 받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주사는 애초 지배구조 투명화, 신속한 사업 구조조정 등의 장점이 있어 대세로 자리잡은 것인데 공기업인 LH가 지주사로 전환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날 LH 지주사 전환 방안에 대해 “아직 구체적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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