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뉴욕타임스(NYT) 행사에 참석해 “비트코인이 종종 불법에 사용된다”며 “거래 수단으로 쓰기에는 매우 비효율적이며 투기적이고 변동성도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랜섬웨어 공격으로 시스템 가동이 중단된 콜로니얼파이프라인이 해커들에게 440만 달러(약 49억 6,000만 원)를 비트코인으로 지급한 일이 있었고 중국의 암호화폐 규제 소식으로 비트코인이 하루 새 30%나 폭락하는 극도의 변동성이 나타나기도 했다. 가뜩이나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우려해온 당국으로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 재무부가 20일(현지 시간) 내놓은 1만 달러 이상 거래 신고 의무화는 이 같은 판단의 결과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가 향후 암호화폐를 본격적인 규제하기 위한 첫 발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옐런 장관은 4일 암호화폐 규제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규제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관들이 몇몇 있지만 솔직히 나는 현재 미국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틀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은 이를 정부에서 암호화폐를 규제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어려우며 그 전에 몇 단계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1만 달러 이상 거래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주요 암호화폐를 사고 파는 이들의 데이터가 축적되면 당국 입장에서는 암호화폐 시장 규제의 수준과 시기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세원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날 미 재무부가 신고 의무화 도입을 발표하면서 강조한 점이 탈세 가능성이다. 재무부 추산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당국이 부과한 세금과 실제로 들어온 금액의 차이는 6,000억 달러에 달한다. 미 국세청(IRS) 입장에서는 거래 정보를 바탕으로 과세 기반을 확대할 수 있다. 4조 달러에 이르는 인프라 투자 계획에서도 세원 확충은 필수다.
디지털 달러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앞서 옐런 장관은 “나는 이것(암호화폐)이 중앙은행의 디지털 통화(CBDC)와 관련해 다룰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를 들여다보고 있다"면서 암호화폐와 CBDC에 대한 논의가 연관돼 있음을 시사했다.
미 경제 방송 CNBC는 이날 연준이 올여름 CBDC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연준이 이번 여름 CBDC 개발에 한 발을 더 내딛게 됐다”며 “중국의 CBDC 관련 움직임은 연준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금까지 연준은 디지털 달러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하지만 이날은 약속이나 한 듯 재무부가 암호화폐신고제 의무화를 발표하고 연준은 CBDC 논의를 진전시킬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쪽에서는 암호화폐를 옥죄고 다른 쪽에서는 디지털 달러를 서두르는 셈이다.
이를 고려하면 향후 암호화폐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JP모건은 “암호화폐는 유동성에 기반한 투기의 전형”이라며 “이것이 꺼지고 있다는 사실은 위험자산 시장에 고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핀보드의 마치에이 체그워브스키 창업자는 “비트코인은 다단계처럼 이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이 중심부를 차지하는 피라미드 구조”라며 “결국 모든 이들이 피라미드 사기처럼 손해를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칼라일그룹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창업자는 “암호화폐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했고 스카이브리지캐피털의 앤서니 스캐러무치 창업자도 “(최근 하락에도) 비트코인은 여전히 강세장에 있다.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은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준도 디지털 달러의 역할에 일정 부분 선을 그었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우리는 CBDC가 은행의 예금 같은 현금과 민간 부문의 디지털 형태 달러화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