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지난 5월 2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참치의 날’이었어요. 무분별한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참치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날이래요. 그렇다고 강렬한 붉은 색에 입에 넣자마자 녹아 내리는 참치 회나 초밥을 멀리할 수 있을까요. 음, 고기 못지 않게 회와 초밥을 사랑하는 에디터 입장에서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런 고민을 덜어줄 식당이 생겼대서 바로 경기도 성남까지 달려갔답니다. 수정구 복정동에 최근 문을 연 ‘에티컬테이블’이에요. 이름 그대로 ‘윤리적 식탁’을 지향하는 이 식당의 현재 주력 메뉴는 ‘비건 초밥’인데요. ‘참치 없는 참치 초밥’과 ‘연어 없는 훈제연어 초밥’은 과연 어떤 맛일지 직접 먹어보고 알려 드릴게요.
일단 다양한 초밥을 맛볼 수 있는 세트를 주문했어요. 비건 초밥 8종과 토핑 유부초밥 3종, 샐러드, 국으로 이뤄진 세트 가격은 2만3,000원. 시작은 샐러드부터. 상추와 미역의 콜라보라는 생소한 조합의 시큼한 샐러드가 입맛을 돋웁니다.
이어서 사이드로 시킨 '비건 굴튀김' 차례. 굴 대신 느타리버섯을 넣은 튀김인데 튀김옷 안 느타리버섯의 촉촉함이 미끄덩한 굴과 비슷한 느낌을 줘 놀랐어요.
다음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초밥 세트가 한상 차려지자 자동으로 ‘와’하는 탄성이 나왔답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등 화려한 총천연색 비주얼에 일동 눈길 고정. 평소 식당에서 음식 사진 찍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에디터도 조용히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말았어요.
처음 집어든 초밥은 당근으로 만든 훈제연어. 근데 어랏? 분명 당근인데 연어회에서 나는 훈제 향이 훅 들어오네요. 식감의 차이만 빼면 진짜 훈제연어 초밥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한 정도에요.
다음 타자는 새빨간 파프리카로 만든 참치 초밥. 오래 삶아 흐물흐물해진 파프리카는 입에 넣자 진짜 참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르르 녹아버리네요.
이어 먹은 명란마요 초밥은 아마란스를 사용해 명란의 톡톡 터지는 식감을 살렸대요. 좁쌀보다 작은 크기의 곡물인 아마란스는 영양소가 풍부해 ‘신이 내린 곡물’이라고도 불린다고.
가지로 만든 장어 초밥은 데리야끼 소스로 장어구이 특유의 맛을 살렸지만 흐물흐물한 가지의 식감 때문에 솔직히 장어 초밥 같은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어요.
오징어 없는 오징어 초밥은 곤약을 사용했네요. 미끌하고 쫀득한 곤약의 식감이 이 정도로 오징어와 비슷했는지 처음 알았어요. 이건 정말 진짜 오징어라고 착각할 정도.
이번에는 대체육으로 만든 고기 초밥. 써브웨이의 대체육 샌드위치에 사용됐던 ‘언리미트’의 식물성 고기를 썼대요. 롯데리아와 버거킹의 온갖 대체육 버거를 섭렵했던 에디터에게는 고기 초밥의 대체육이 훠월씬 맛있고 진짜 고기 같았어요.
다음 차례로 토마토로 만든 참치 초밥 2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껍질을 벗겨 익힌 두툼한 토마토를 얹은 참치 초밥은 입에 넣자마자 녹아 내리는 참치의 식감을 비슷하게 재현했네요. 다진 참치살로 만드는 ‘네기 토로’에는 잘 다져진 토마토가 들어가 있어요. 먹다보니 이게 다진 토마토인지 다진 참치살인지 헷갈릴 정도에요. 정말 토마토를 씹으면서 참치를 느낄 날이 올 줄을 몰랐어요.
다음은 비건 초밥 체험에서 가장 놀라움을 줬던 유부초밥의 차례에요. 요즘 백화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핑 유부초밥 스타일인대요. 먼저 참치 없는 참치마요 토핑 유부초밥부터 한입. 참치 대신 아몬드, 해바라기씨 등 견과류를 갈아서 사용했다는데 왜 익숙한 참치마요의 맛이 나는 걸까요. 완전 신기. 이어서 달걀 없는 스크램블드 에그 토핑 유부초밥. 단호박과 연두부로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들었다는데 맛과 질감 모두 살짝 덜 익힌 스크램블드 에그 그 자체였어요. 모르고 먹으면 달걀로 착각할 정도. 세 번째 고기 없는 미트소보로 토핑 유부초밥은 식물성 고기인 ‘브이민스’를 사용했어요. 숯불향 입힌 고기 맛과 고기 씹는 느낌에 놀라움의 연속이네요.
먼저 맛본 생선 없는 초밥이 식물성 재료로 생선 초밥의 모양이나 식감을 재현하는데 치중한 느낌이라면 토핑 유부초밥은 모양과 식감은 물론 맛까지 깜짝 놀랄 정도로 복사해 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건 초밥을 배불리 먹고 나오는 길에 주방 가림막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어요. ‘동물과 지구 그 누구도 고통받지 않는 윤리적 식탁’. 이 식당의 지향하는 바를 표현한 말 같아요.
솔직히 채식에 이제 막 도전하는 육식주의자 입장에서 비건 음식의 맛이 조금 걱정됐던 게 사실이에요. 비건 초밥 역시 생선 초밥에 비해 맛이 덜할 것이란 선입견도 있었고요.
하지만 비건 초밥을 먹고 나서 식물성 재료로 만든 초밥도 충분히 맛있고, 굳이 비건 재료로 생선 초밥의 맛을 흉내 낼 필요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근, 파프리카, 가지, 토마토 등 채소 본연의 맛과 초밥의 조화를 즐기면 되거든요.
한 마디로 ‘에티컬 테이블’은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가 사이 좋게 한 자리에 앉아 초밥을 즐길 수 있는 음식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초밥 외에 다양한 비건 음식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되네요.
/이재용 기자 jy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