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부글'…아일랜드 여객기 강제착륙 시켜 야권인사 체포한 벨라루스 대통령

벨라루스 민스크 공항의 한 당국자가 23일(현지시간) 라이언에어 소속 보잉737 항공기에서 승객들의 짐을 내려 보안 검사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2개국 170명 승객을 태우고 비행 중인 타국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켜 해당 탑승한 반체제 인사를 체포한 사건이 벨라루스에서 벌어졌다. 유럽 전체가 이를 즉각 강력 비판하고 나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23일(현지시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그리스 아테네를 출발해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가던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 비행기를 벨라루스 수도 민크스에 강제 착륙시켰다.


강제 착륙은 야권 성향 텔레그램 채널 '넥스타'(NEXTA)의 전 편집장 라만 프라타세비치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는 민크스 공항에서 현지 보안당국에 곧바로 체포됐다.


벨라루스 측은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키기 위해 기내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넥스타 측은 “여객기 점검 결과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고 모든 승객은 보안 검색을 받았다”면서 “프라타셰비치는 체포됐다”고 전했다.


친정부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풀 페르보보'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직접 여객기 비상착륙을 지시했다”면서 “여객기 호송을 위해 미그-29 전투기를 출동시키도록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이번 사건 소식에 격분했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트위터에 “이번 일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모든 승객은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도 이날 트위터에 “벨라루스 정부에 승객과 여객기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라고 경고했다.


벨라루스는 지난해 8월 대선 부정에 따른 사회 혼란이 아직 수그러지들지 않은 상태다. 30년 가까이 장기집권한 루카셴코 대통령이 80%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한 것으로 나타나자 저항 시위가 수개월 이어졌다. 대선에서 낙선한 여성 야권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신변 위협으로 리투아니아로 망명했다.


프라타세비치는 2019년 정부 탄압을 피해 폴란드로 도피했지만 지난해 시위를 배후에서 부추겼다는 혐의로 당국으로부터 ‘테러활동 가담자’ 목록에 올랐다. 시위 당시 야권의 소통 플랫폼으로 이용된 넥스타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됐다. 벨라루스 검찰은 지난해 11월 폴란드 법무부에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해 인도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벨라루스 야권의 저항 시위는 올해들어 잠잠해지긴 했지만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다.




벨라루스 보안당국에 체포된 반체제 인사 라만 프라타세비치. /로이터연합뉴스


/맹준호 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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