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컬렉션은 시간·기억을 사는 것...나만의 철학 쌓아야죠"

[이사람]미술컬렉터 김용원
고교 은사 박상옥 화백 전시 들러
'안개꽃' 한 점 구입한 게 첫 컬렉션
세계관·고집 분명한 화가들에 관심
이중섭·박수근·이우환 등 초기 발굴
많이 보고 돈 주고 사야 더 큰 애착
남이 좋다는 미술품 구입하기보다
내 눈에 좋은 그림이 만족감도 커

미술품 수집가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 꿈 대표가 자신의 소장품인 홍순모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를 앞에 둔 채 뒷 벽면의 김원숙 작품 ‘떠다니는 달(Floating Moon)’을 배경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컬렉터의 집에 들어섰을 때 처음 마주한 작품은 의외의(?) 새 한 마리였다. 키 30㎝ 정도의 테라코타(흙으로 만들어 구운 조각)인데 살진 병아리라고 하기에는 좀 크고 볏이 자라지 못한 모습을 보면 닭이라기에는 이른, 새라고 하기에는 다리가 짐승처럼 굵고 날개가 작아 ‘날기는 어렵겠다’ 싶은 독특한 형상이다. 흙 기운이 남아 도는 붉은 빛이 신비한 생명력은 분명히 품고 있는 작품이다.


“권진규의 조각이에요. 성북구 동선동의 언덕배기 작업실에서 천장에 늘어져 있던 쇠사슬에 달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조각가 말이죠.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유서와 함께 장례 비용에 쓰라며 얼마간의 돈을 바로 이 새 발 밑에 끼워뒀다고 해요. 조각가의 최후가 눈에 선해 마음이 아파요. 그런 사연이 있기에 이 ‘새’만은 절대 누구에게도 내줄 수 없어요.”



김용원 대표의 애장품 중 하나인 권진규의 '새'.

다정하게 설명하는 집주인의 눈빛이 잠시 작가와 교신(交信)한 듯 반짝였다. 웬만한 큐레이터나 미술사학자 못지 않게 작가론을 펼치는 이 사람은 미술품 수집가로 유명한 김용원(86·사진) 도서출판 삶과 꿈 대표다. 신문기자였던 지난 1966년부터 월급을 쪼개고 모아 그림을 사기 시작했고 신문사 편집국장, 대우전자 사장을 거치면서 꾸준히 작품을 수집해 우리 근현대미술사의 산 증인이 된 이다.


‘새’에서 고개를 돌리니 정면에 인왕산이 펼쳐진다. 겸재 정신의 ‘인왕제색도’와 꼭 같은 구도의 그림인데 표현이 더 현대적이고 경쾌하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기념 사진에서 배경이 된 ‘북한산’의 작가 민정기 작품이다. 그 옆벽은 제주의 몽환적인 바람이 느껴지는 누런 풍경이 차지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화단의 주류인 ‘광풍회’의 최연소 최고상 수상자로 극일(克日)한 변시지의 작품이다. 김 대표는 변시지의 작품을 많이 가진 개인 소장가 중 한 사람이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끝에는 사시사철 지지 않는 노란 꽃 무더기가 풍성하다. 그 탐스러운 꽃이 ‘설악산의 화가’로 유명한 김종학의 초기작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설악산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그려낸 꽃 그림이라고 해요. 격정의 시기를 보낸 작가의 가장 진지한 시절이었을 거예요. 다른 작품들과 서명이 좀 달라서 작가에게 물어보니 특별히 마음에 흡족한 작품이라 그리 적었다 하더라고요.” 1960년대 추상 작업을 하던 작가가 1980년대 이후 지금의 화려한 ‘꽃’ 연작을 내놓기 전 과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김용원 대표의 평창동 갤러리하우스 ‘운심석면’에 민정기 화백의 작품 및 여러 수집품들이 전시 중이다.

2층 안쪽에는 붓질 자체가 점(點)이 되고 그 점이 면(面)처럼 수북한 그림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다. 거장 이우환의 1970년대 초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인 ‘점’ ‘선’ ‘바람’ 시리즈의 가장 초기적 형태를 보여주는 희귀작이다.


“1970년대 초에 자주 찾아갔던 명동화랑의 김문호 사장이 안국동으로 이전한 뒤 이 화백의 전시를 열었는데 그때만 해도 잘 모르는 작가였기에 ‘돕는다’는 생각으로 사둔 것이 이후 작가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이어졌죠. 그의 판화도 몇 점 사서 가까운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는데 그림을 잘 몰라 그런지 그리 달가워하는 반응이 아니더군요. 그때만 해도 그랬어요.”


30대 초부터 그림을 수집해 안목으로는 국내 최고 수준이 된 그는 “미술품 구입은 시간과 기억과 추억을 사는 것”이라며 “돈이 많아 그림을 사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도 처음에는 “그림을 몰랐다”고 한다. 신혼 때 고교 시절 담임이던 박상옥 화백의 전시에 우연히 들렀다 ‘안개꽃’ 한 점을 구입한 것이 첫 컬렉션이었다.


“두 번째 컬렉션은 신문사 문화부 선배와 점심을 먹다 따라간 인사동 현대화랑(지금의 갤러리현대)에서 본 이응노의 족자였어요. 한 점에 2만 원인데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어서 구입해 집에 걸었더니 분위기도 달라지고 아침 저녁으로 기분도 남달랐죠. 지금은 미술 투자라고도 하던데 마침 그때 읽은 책에서 유대인들이 재산 가치를 따져 이재(理財)로 그림을 사 모은다는 부분도 흥미로웠고요.” 한 점 샀더니 전시 때마다 연락이 오고 그렇게 그의 컬렉션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술품 수집가 김용원.

그의 미술 수집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도 궤를 같이 한다.


“1960~1970년대 막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할 때 서대문 계명아파트가 내 첫 집이었어요. 벽이 있으니 그림을 걸기 시작했죠. 이촌동으로, 반포로 이사하고 집을 늘리며 그림을 거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벽장을 채운 책, 관광지 풍경을 담은 항공사 달력을 벽에 매달던 시절이니 그림을 걸면서 삶도 달라졌죠.”


그림 값이 오른 것은 덤이었다. 1975년 인사동 화랑에서 거금 400만 원에 구입한 겸재 정선의 말년작 ‘노송영지도’는 사업 자금 때문에 2001년 경매에 내놓았는데 경합이 붙어 7억 원에 팔렸다. 신문사 편집국장 시절 천경자 화백의 해외여행 소식을 듣고 글과 그림을 연재하게 한 것이 그 유명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의 탄생을 이끌었다.


“장욱진·박고석·최영림·권진규 등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던 시절에 일찍 발견했죠. 남이 알아보지 못하는 작가, 그러나 자기 세계와 고집·실력이 분명한 화가들에게 관심이 있어 찾아다녔습니다. 나중에는 고서화로 눈을 돌려 현대 작품을 팔아 고미술을 수집했죠. 이중섭·박수근·이인성·도상봉 등 비싸진 그림을 팔아 다른 그림을 사는 것을 ‘말을 갈아탄다’고 합니다. 그렇게 미술이라는 무한한 미지의 세계를 좇으며 일생을 산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림을 사는 일은 그 안에 삶과 사연이 얽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컬렉션은 나의 흔적이고, 내 젊은 날의 추억이고 꿈입니다.”


최근 들어 문화 수준 향상, 취향 소비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MZ세대의 등장으로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갖는 젊은 층이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라 했다.


“다만 남들이 좋다는 그림을 귀동냥으로 사는 것은 위험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많이 보는 일이죠. 미술관·박물관을 다니며 좋다는 전시는 다 봤어요. 뭐가 좋은지를 수치로 측량하듯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새 좋은 그림이 내 눈에 찾아와 박힙니다. 나만의 작품 세계가 생겨야 컬렉터로서의 첫 걸음이 시작됩니다.”



김용원 대표가 수집한 안영일(오른쪽부터)·이우환·박고석 등 거장의 작품은 한국 현대미술사를 관통하기에 의미가 크다.

김 대표의 경우 대학교수·평론가·미술기자들에게 “우리 미술사에 남을 화가가 누구인가”를 물었고 10명씩 추천을 받아 그 교집합인 작가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좋은 컬렉터가 되는 비결을 물었다.


“좋아하는 그림을 돈 주고 사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 비용은 일종의 수업료일 수도 있는데 돈 주고 사 봐야 그림에 대한 애착과 더 큰 관심이 생깁니다. 없는 돈 아껴서, 빚내서 이자 갚으며 사둔 그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진짜 컬렉션입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컬렉션에 철학이 쌓입니다. 나중에는 화가의 지명도와 상관없이, 이름 없어도 내 눈에 좋은 그림이 주는 깊은 만족감이 더 귀하게 다가오죠. 수집은 애정이고, 그렇게 형성된 컬렉션이 곧 삶입니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사진=이호재 기자 s02079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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