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충암고등학교 대회의실에 모인 20여명의 학생들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학생들은 그 동안 학교에서 듣기 어려웠던 예술 주제의 특별 강좌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예술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 일상에서도 편하게 예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본 강의의 궁극적 목표”라고 밝힌 조각가 박원주 인하대 조형예술학과 강사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현대미술을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박 강사는 “미술품을 보고 ‘왜 이렇게 했을까’라고 궁금증이 생긴다면 작품의 제목, 작가가 살았던 시대, 작품이 나온 시기를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며 케이티 패터슨(Katie Paterson, 1981~)의 작품 ‘달빛을 시뮬레이션 한 전구(light bulb to simulate moonlight, 2008)’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패터슨은 전구 회사인 오스람(OSRAM)에 의뢰해 달빛에 가까운 광선을 방출하는 전구 289개를 제작했다. 전시장의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면 천장에 긴 전선을 내려 낮게 매달아 놓은 전구가 빛을 내고 있다. 나머지 288개의 전구는 8개씩 16줄의 선반에 차례로 진열돼 있다. 각 전구의 수명은 2,000시간. 2,000시간에 289개의 전구 수를 곱하면 약 66년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이것은 제작 당시의 영국의 평균 수명으로 작가는 전구를 통해 사람의 ‘일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전구가 채워진 16개의 선반 아래 한 개의 빈 선반이 눈에 들어 왔다는 박 강사는 “‘66년은 평균수명이므로 이 마지막 선반은 삶의 개인차를 의미하는 작가의 깊은 뜻이 아닐까’라고 해석하고 나니 마음이 설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마지막 빈 선반에 대한 해석은 찾을 없었다”며 “어쩌면 이 작품에 대해 내가 ‘즐거운 오해’를 한 것 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에 대한 이렇게 오해와 이해를 반복하면서 예술을 알아가고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대문도서관이 마련한 박 강사의 ‘잠자는 예술 흔들어 깨우기’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원격 강의 등 비대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이 날 학생들은 오렌지를 분해해 관찰 한 후 글로 설명하고 그 글을 다시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도 가졌다. 박 강사는 “주변의 흔한 것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으로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 탄생 할 수 있다”며 “예술 활동과 예술 작품은 우리가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의에 참여한 충암고 1학년 황찬우 군은 “예술에 문외한이었는데 강의를 듣고 나니 앞으로 예술 작품을 편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진영애 충암고 음악 교사는 “그동안 예체능 관련 강좌를 열 기회가 없었다”며 “이번 강좌처럼 정규 수업 이외의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개최해 학생들에게 자기탐색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오는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