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쿠데타가 낳은 한 형제의 비극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군대에 몸담고 있던 형은 유혈진압에 앞장서는 경찰청장이 됐고, 한평생 민주화투쟁을 이어온 동생은 보안군에 끌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현지매체 이라와디는 26일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해온 꼬 소 모 흘라잉(53)이 이틀 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꼬 소 모 흘라잉은 지난 22일 바고 지역의 자웅 투 마을에서 군부 정보원의 밀고로 보안군에게 붙잡혔다. 목격자들은 보안군이 체포 전 그를 개머리판으로 폭행했다고 증언했다. 그의 아내는 이틀 뒤인 지난 24일 그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친구들은 이라와디에 “꼬 소 모 흘라잉이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 끝에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한 꼬 소 모 흘라잉은 군부 쿠데타 이후 내무부 차관 겸 경찰청장에 오른 탄 흘라잉 중장의 친동생이다. 베테랑 민주화운동가가 반군부 시위를 진압하는 군경 핵심 인물의 친형제인 것이다.
꼬 소 모 흘라잉의 친구이자 민주화운동가인 툰 툰 조 우는 페이스북에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 중 한 명은 우리의 동지가 됐고, 한 명은 군견이 됐다”고 했다. 툰 툰 조 우에 따르면 미얀마의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8년부터 형제의 인생 궤적은 달라졌다. 그는 “1988년 두 사람은 카렌주의 전장에서 서로 싸웠다”며 “당시 꼬 소 모 흘라잉의 형은 그를 죽이겠다고 했다”고 썼다. 1988년 8월 8일 양곤에서 벌어진 8888 민주화 항쟁 이후, 학생들은 국경지역으로 가 반군부 무장투쟁을 선언하고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을 창설했다. 꼬 쏘 모 흘리앙은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한 첫 학생 무장단체였던 ABSDF에 합류한 반면, 형은 군인이 됐다. 형제는 국경지역인 카렌주에서 서로 총칼을 맞댔다.
이후에도 꼬 소 모 흘리앙은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 등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1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석방된 뒤에는 바고 지역에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제공하는 단체를 만들었고, 지역 개발과 주민 복지를 위한 활동도 벌였다. 이에 대해 이라와디는 “군부 핵심 인사로 악명이 높은 형과는 전혀 다른 삶”이라고 보도했다.
꼬 소 모 흘라잉과 함께 정치범으로 옥살이를 했던 동료는 이라와디에 “가족 중에 군인이 있었음에도 그는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 참여부터 학도병 활동까지 평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면서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좋은 동료를 잃어 너무나도 슬프다”며 그를 추모했다.
한편, 형인 딴 흘라잉 중장은 쿠데타가 시작된 뒤 내무부 차관 겸 경찰청장으로 승진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그는 군경이 미얀마 국민을 상대로 자행해 온 잔인한 유혈진압의 원흉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인권단체 정치법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지난 25일까지 미얀마에서 군경 폭력으로 사망한 이는 827명에 달한다.
/홍연우 인턴기자 yeonwoo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