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은 더 이상 홍 씨 오너 일가 체제로는 돌아선 소비자들의 민심을 회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홍 전 회장은 불가리스 사태뿐 아니라 경쟁사 비방 등 남양유업이 수사를 받고 있는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있어 ‘오너 리스크가 가장 큰 문제’라는 비판에 직면해 정상적인 경영이 힘든 상태였다. 소비자들이 등을 돌린 남양유업을 인수한 한앤컴퍼니는 웅진식품을 인수한 지 6년 만에 배 이상의 차액을 남기며 매각한 국내 대표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을 식품 업계의 ‘정상기업’으로 회복시켜 놓을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양유업 매각의 도화선이 된 사건은 지난달 불가리스 사태다. 남양유업이 지난 4월 13일 한국의과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인체 실험도 아니었고 단순 세포 실험이었음에도 마치 불가리스를 마시면 코로나19를 억제할 수 있는 것처럼 결과를 호도한 것이 문제가 됐다.
발표 직후 남양유업의 시련은 시작됐다. 질병관리청은 “인체 대상의 연구가 아니어서 효과를 예상하기 어렵다”고 일축했고 결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영업 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최근에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로부터 지난달 30일 남양유업 본사와 세종연구소 등 총 6곳을 압수수색 당하며 주가조작 의혹까지 받았다. 앞선 2013년 대리점 갑질을 시작으로 남양유업의 이미지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2013년 5월 본사 영업 직원이 대리점 직원을 상대로 폭언을 한 것이 공개됐는데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수요가 많지 않은 상품을 대리점에 강매하는 이른바 ‘밀어내기’ 갑질이 드러나 큰 공분을 샀다. 일주일여 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홍 전 회장이 사과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사과의 진실성이 없다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홍 전 회장은 이달 4일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를 진행했지만 남양유업에 대한 여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비대위 체제를 구축하고 모친과 아들의 사내이사 사퇴도 발표했지만 홍 전 회장은 등기이사 직에서 남아 있겠다는 뉘앙스를 풍기자 비판 여론은 더욱 커졌다.
한편 남양유업을 인수한 한앤컴퍼니는 운용규모(AUM) 8조 1,000억 원에 달하는 국내 대표 대형 PEF다. 모건스탠리 PE 부문 아시아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낸 한상원 대표가 2010년 설립했다. 그동안은 주로 제조업 분야 인수합병(M&A)에 집중해왔다. 쌍용양회·에이치라인해운·한온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중고차 업계 1위 케이카도 대표 포트폴리오다. 유통 부문으로 사업도 확장하고 있다. 2013년 웅진식품을 1,150억 원에 사 2019년 대만 퉁이그룹에 2,600억 원에 매각하면서 유통 부문에서도 실력을 뽐낸 바 있다. 호텔현대를 인수해 자체 브랜드 ‘라한호텔’을 출범시켰고 지난해 8월에는 대한항공 기내식 및 기내면세품 사업을 9,906억 원에 인수했다.
한앤컴퍼니는 국내 최초로 투자회사에 도입한 집행임원제도를 남양유업에도 적용해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효율화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집행임원제도는 의사결정과 감독 기능을 하는 이사회와 별도로 전문 업무 집행임원을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제도로 이사회의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집행부의 책임 경영을 높이는 경영 방식이다.
한앤컴퍼니 관계자는 “한앤컴퍼니는 기업 인수 후 기업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로 기업가치를 제고해왔다”며 “적극적인 투자와 경영 투명성 강화를 통해 소비자와 딜러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랑받는 새로운 남양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형윤 기자 man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