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강원도 삼척을 다녀왔습니다. 삼척 시내, 특히 외식업체들에 붙어있는 플래 카드가 눈에 띄었습니다. “삼척화력 공사 재개 조속히 해결하여 민생경제 살려내라! 약속 이행!”이라는 내용이었는데요. 발전소 한 곳의 ‘공사 재개’와 ‘민생 경제 살려내라’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 골똘히 고민했는데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박경복 경제살리기 운동본부 삼척시 지회장을 만나게 됐습니다. 설명을 들으니 단번에 이해가 되더군요. 그는 “삼척 경제는 석탄, 시멘트 등 기존 주력 산업이 쓰러지며 붕괴됐습니다. 이미 다 사그라든 경제에 자그마한 불씨라도 될까 싶어 삼척블루파워 공사를 시작했는데 외부 환경단체가 멋대로 중단시키려 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삼척블루파워는 석탄 화력발전소입니다. 저탄소가 시대 사명인데 웬 화력발전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척 주민들 설명을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정희수 삼척상공회의소 회장은 “화력발전은 LNG 대비 고용 인원이 7배 가량 많은 1,500여명에 달합니다. 지역 경제 고사를 막을 마지막 카드가 삼척블루파워입니다. 여기에 삼척블루파워가 들어서는 곳은 동양시멘트가 50년 동안 석회석을 노지 채광한 곳인데 현재는 폐광이 됐습니다. 폐광에서 바람 불면 비산 먼지가 삼척 시내를 덮고 비가 오면 석회 가루가 바다로 흘러 해산물이 싹 죽습니다. 해당 부지에 발전소가 들어서면 환경정비를 통해 이 문제가 한번에 해결됩니다. 게다가 석탄 채굴을 주력 산업으로 삼던 삼척 주민에게 석탄 화력발전은 친숙한 발전원 중 하나입니다”고 설명합니다.
이 발전소를 지키기 위해 삼척 시민들은 2017년 18번이나 상경 투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석탄 화력발전으로 계획됐던 삼척블루파워를 문재인 정부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전환하려던 걸 시민들이 막아낸 겁니다. 당시 진행된 삼척블루파워 건설 찬반 투표에서 찬성률은 96.8%에 달합니다. 해당 투표에는 삼척 시민 절반 규모인 3만 8,0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2018년 8월 삼척블루파워 공사가 첫 삽을 뜰 때까지만 해도 삼척 시민들 가슴은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고 합니다. 인구 6만 5,000여명 도시에 일간 약 2,000명 규모 신규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식당들은 앞다퉈 식자재를 주문했고 민박집은 수천만 원을 들여 설비를 뜯어 고쳤다고 합니다. 건설장비 종사자들은 2억 5,000만~5억 원 짜리 덤프 트럭과 크레인 등을 할부 구매했답니다. 2년 9개월이 지난 지금 삼척 시민들의 꿈은 악몽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박 지회장은 “삼척블루파워 항만 공사가 8개월 가량 멈추며 월 400만~800만 원의 할부금을 감당 못하는 건설장비 업체에는 압류장이 붙고 있습니다. 외식·숙박업체에는 파리만 날리고 있습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삼척 시민들은 지역 여론은 무시한 채 공사를 막으려고 하는 일부 국회 의원과 외부 환경 단체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국회의원은 작년 10월 ‘에너지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을 발의해 삼척블루파워 공사를 무산시키려는 중이고, 외부 환경단체들은 “항만 공사로 인근 맹방해변이 침식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항만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삼척블루파워는 해상을 통해 석탄을 공급받는데 항만이 없으면 발전소가 완공돼도 가동이 불가능합니다. 이에 삼척블루파워는 해변 침식을 막기위한 시설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외부 환경단체 측은 기준에 맞지 않다며 재검증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들 주장처럼 정말 석탄 화력발전은 당장 없애야하는 발전소일까요. 전문가들은 ‘질서있는 퇴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발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기 생산량을 늘린다지만 아직은 효율이 높지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는 역할로서 석탄 발전의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고 설명합니다. 즉 신재생에너지를 더 확대하기 위해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 전력으로서 석탄 발전소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질문이 뒤따를 수도 있습니다. 석탄 화력발전소 대신 LNG 발전소를 늘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거죠. 가격이 발목을 잡습니다. 석탄 대비 LNG는 가격 변동폭이 큽니다. 95% 이상 에너지를 수입하는 우리나라가 선택하기에는 리스크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에너지 정책에는 기저 발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값싸게 대량으로 전기 생산이 가능한 발전원으로 상시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간 원전과 석탄이 이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친환경이 전세계 에너지 정책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은 석탄 화력발전의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저 발전 역할을 한 석탄 화력발전을 단번에 없애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서있는 퇴장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오염 물질 배출이 많은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를 닫고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신규 발전소를 운영하는 게 대안으로 꼽힙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삼척에 건설 중인 석탄 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는 최신 기술을 써 기존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대비 오염물질 배출량이 현저히 낮습니다. 대기환경 보전법에 따르면 석탄 화력발전소의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먼지 배출 허용 기준은 각각 25ppm, 15ppm, 5mg/㎥입니다. 삼척블루파워는 각각 15ppm, 10ppm, 4mg/㎥만 배출해 법 기준 대비 40%, 34%, 20%나 낮습니다.
이 외에도 석회석 폐광산 부지를 활용해 발전소 건설에 따른 자연 훼손이 방지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회처리장이 없는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석탄 화력발전을 하고 나면 재가 남는데 이를 저장하는 곳을 회처리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삼척블루파워는 밀폐식 배관을 통해 이 회를 지역의 시멘트 공장이 삼표시멘트로 바로 보냅니다. 이는 시멘트의 원재료가 됩니다. 기업 간 상생과 친환경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겁니다. 또 석탄이 원료 이동 과정 상 분진 발생이 불가피한 점을 고려해 저장고, 이송설비, 하역기를 모두 밀폐식으로 설치했습니다. 이는 모두 삼척시민들과 발전소, 전문가, 지자체가 협의를 통해 내놓은 결과물입니다.
이 때문에 삼척 시민들은 일부 의원과 외부 환경단체들이 삼척블루파워 공사를 중단시키려는 게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기숙 삼척시환경단체연합회 회장은 “삼척블루파워 공사 전인 2000년 초반부터 맹방해변은 이미 침식되고 있었습니다. 일부 의원과 외부 환경단체가 환경 보호는 명목이고 국내 마지막 화력 발전소 건설을 막았다는 업적만 챙기고 싶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고 꼬집었습니다.
/삼척=서종갑 기자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