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선수 배제된 올림픽 개최 논의

박민영 골프팀장
IOC·日 이기적 셈법에 아직 안갯속
"감염은 선수 책임" 발언까지 나와
희생자는 늘 묵묵히 땀흘린 선수들
스포츠에 정치 논리 구태 사라지길


지난 2017년 11월 15일은 포항 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하루 앞두고 1주일 연기된 날이다.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진 이튿날, 제 방에서 책을 펴놓고 앉아 있는 딸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을 기억한다.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내기 위해 시험 전 1~2주간은 먹고 자고 일어나는 시간까지 ‘운명의 날’에 맞추는 게 수험생이다. 극도의 중압감 속에 기어이 오고 만 그날이 미뤄진 것이다. 다시 긴장의 끈을 붙들어 매고 생체리듬을 유지해야 하는 고통은 당사자만 알 수 있을 듯싶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7월 23일~9월 5일)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축제 분위기가 달아오르기는커녕 개최 자체가 안갯속이다. 이미 1년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선수들의 상황이 수능 연기 기억을 소환했다. 4년도 모자라 5년을 기다려온 선수들은 고된 훈련은 물론 불확실성과도 싸우고 있다. 자칫 목표 의식이 흐트러지면 뼈를 깎는 노고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정부, 도쿄도 등은 올림픽 개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세계 여론뿐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안전을 고려해 재연기 또는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이런 논의에 정치·경제적 계산만 깊숙이 자리한 채 정작 선수들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머리가 아플 것이다. 지난해 9월 집권한 스가 총리는 올 가을 총선거 승리를 위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다는 구상이다. 반면 올림픽 취소가 정권 유지에 더 낫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18세 이상 일본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올림픽을 취소 또는 재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83%나 됐다고 한다. 하지만 취소는 부담이 크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연기에 따른 추가 부담액 1,980억 엔(약 2조 원)을 떠안은 데다 취소하면 900억 엔 규모의 입장권 수입이 사라진다.


IOC는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개최를 강행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IOC 매출의 73%는 방송사가 지불하는 올림픽 중계권료, 18%는 올림픽 파트너 기업이 내는 후원금이 차지한다. 내년부터 10년간 받을 올림픽 중계권료가 77억 5,000만 달러(약 8조 6,400억 원)임을 고려하면 도쿄올림픽 중계권료 수입도 천문학적일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선수들은 올림픽 개최 여부를 둔 갑론을박에서 격리돼 있다. 지난 4월 14일 올림픽을 100일 앞두고 진천 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태극 전사들은 “방역 속에 외출·외박도 되지 않지만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설마 다시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다”고 집중하기 힘든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 IOC는 무책임함으로 선수들의 사기를 더 꺾어놓았다. 라나 하다드 IOC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가 대회 기간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경우에도 주최자는 면책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받겠다고 밝혔다. 감염은 참가자 개인 책임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선수 우선주의’를 주장해온 IOC의 위선과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스포츠에 정치·경제적 논리가 적용돼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평화 올림픽 구현 의지를 강조하면서 일부 종목 단일팀 구성이 무리하게 진행됐다. 최근에는 미중의 대립 속에 미국이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불참 가능성을 수시로 언급하고 있으며, 한국 정치권에서는 도쿄올림픽 ‘독도 지도’를 문제로 보이콧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말 한 마디에 낙담할 수도 있는 선수 입장은 고려 대상이 아닌 듯하다. 정치·외교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사안에 스포츠를 볼모 삼는 구태는 사라져야 한다. 그때마다 희생자는 늘 ‘수능’을 목표로 묵묵히 땀 흘리는 선수들이다.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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