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무브 투 헤븐' 탕준상 "감정을 덜 표현해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사진=넷플릭스

‘무브 투 헤븐’이 공개되자마자 호평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주연배우 탕준상은 아직까지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번 작품을 보지 못했다. 2022년 1월 1일이 되자마자 친구들과 모여 ‘무브 투 헤븐’을 보기로 약속했다는 탕준상은 아직 열아홉이지만, 매 작품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며 어엿한 주연배우로 자리 잡았다.


‘무브 투 헤븐’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 한그루(탕준상)와 그의 후견인이자 삼촌인 조상구(이제훈)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그들이 남긴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내가) 작품을 선택한 게 아니라 감독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설명한 탕준상은 “전작 ‘나랏말싸미’와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각각 동자승과 북한 소년 이미지에 잘 어울려서 캐스팅됐다”는 비하인드를 전했다.


“대본을 미리 읽었을 때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작품을 선택할 입장은 아니었어요. 감독님께서 ‘나랏말싸미’에서 저를 처음 봤다고 하셨는데, 제가 연기한 동자승이 염불을 외는 장면과 ‘무브 투 헤븐’ 그루가 물고기 이름으로 주문을 외우는 모습이 겹쳐 보였대요. 그래서 인터넷에 저를 검색해보셨는데, 짧은 머리에 초록색 옷을 입은 프로필 사진이 감독님이 생각했던 그루 이미지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극 중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한그루는 늘 반복되는 규칙이 깨지면 극심한 불안을 느끼는 인물이다. 불안정한 시선과 함께 로봇처럼 말을 내뱉는 한그루를 잘 표현하기 위해선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굿 닥터’, ‘증인’, ‘말아톤’에서 비슷한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그들과 차별화된 한그루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탕준상은 감독님과 상의하며 한그루에게 어울리는 목소리 톤과 시선, 움직임을 찾는 데 주력했다.


“어쩌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사람마다 성격이나 개성이 모두 다른 것처럼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병을 가진 분들도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해요. 그래서 한 사람을 딱 정해놓고 따라하는 게 조심스러웠고, 그렇다고 너무 제멋대로 연기할 수도 없었어요. ‘굿 닥터’ 같은 작품을 참고하긴 했지만, 그루는 그 사람들과 분명 다른 캐릭터이기 때문에 너무 따라하지는 않으려고 했어요. 그루에게 어울리는 톤이나 목을 흔드는 동작 등을 연구하면서 기존 작품에 노출된 아스퍼거 증후군의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어요. 따지자면 그루는 다른 작품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던 인물들보다는 덜 심한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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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정리사 한그루는 주인이 사라진 빈방에 인사를 건네며 유품 정리를 시작한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물건을 모두 치우고, 고인의 마음이 담긴 유품을 하나둘씩 박스에 담는다. 그 속에서 떠난 이들이 남긴 메시지를 찾아 유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 전달한다. 시청자에게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처럼, 탕준상에게도 유품정리사는 생소한 직업이었다.


“처음엔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을 듣고 ‘그런 직업이 있나? 장례지도사 같은 건가? 아니면 시신 처리를 하는 건가?’ 생각했어요. 김새별 작가님이 쓰신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찾아서 읽고 대본도 다 읽은 뒤에야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고 마지막 이사를 돕는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정말 힘든 직업이기 때문에 더 귀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죽기 전에 유품정리사에게 의뢰를 하고 싶어요. 유품정리사분이 편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제가 잘 살아서, 죽고 나서도 부끄럼 없는 모습을 보여드릴 거예요.”


유품정리 업체 ‘무브 투 헤븐’은 고독사한 비정규직 노동자,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다 살해당한 여성, 자식에게 버림받은 할머니의 죽음을 마주한다. 탕준상은 대본을 읽는 내내 눈물을 흘렸지만, 극 중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고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한그루를 연기하기 위해 울컥하는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다.


“그루는 감정이 내재된 캐릭터였고, 항상 감정을 덜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그럼에도 10회에서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는 장면이나 홀로 수족관에 찾아가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마음이 계속 울컥했는데 꾹 참았어요. 아빠 유품을 정리하는 신에서 아빠가 남긴 동영상을 실제로 보면서 촬영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 있더라고요. 모니터하면서 ‘어? 눈물이 나와버렸네?’라고 생각했지만 (재촬영 없이) 그대로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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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죽은 형이 남긴 유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조상구(이제훈)는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으로 혼자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해야 하는 한그루의 임시 후견인이 된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둘은 한집에 살면서 끊임없이 부딪히지만, 함께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가족이 되어간다. 때로는 친구가, 때로는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준 이들의 가슴 따뜻한 케미는 19살이라는 나이 차를 잊게 할 정도로 빛났다.


첫 성인 역할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지만, 옆에서 도와준 이제훈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혼자 주인공을 맡아 성인 연기를 하고, 그루라는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맡은 상황이었으면 굉장히 버거웠을 것”이라는 그는 궁금한 내용을 질문할 때마다 진심으로 조언해준 이제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내비쳤다.


“이번 작품에서 만나기 전부터 이제훈 선배님의 엄청난 팬이었는데, 실제 나이는 몰랐어요. 워낙 동안이시라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30대 초반이나 중반일 줄 알았어요. 나이 차이를 듣고 엄청 놀라긴 했지만, 앞으로 몇 달 동안 같이 연기하고 호흡해야 하는 사이니까 일부러 나이는 생각을 안 하려고 했어요. ‘많이 배워야겠다’라는 마음만 가지고 촬영에 임했고, 촬영하다 보니 정말 많이 친해져서 너무 행복했어요. 그래서 케미도 더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스무 살, ‘성인 연기자’ 타이틀을 앞둔 그에게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끝까지 배우로 남고 싶고 다양한 연기를 시도하고 싶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안정적이지만은 않다”며 ‘더이상 날 안 찾아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승우, 조정석처럼 뮤지컬과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그는 앳된 미소와 함께 다가오는 20대 때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나열했다.


“얼른 운전면허를 따서 혼자 드라이브를 떠나고 싶고, 배낭여행도 가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인생작을 많이 남기는 20대를 보내고 싶어요. 늘 작품을 많이 하고 싶은 마음뿐이죠. 최근에는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대신 홈스쿨링을 해서 4월에 검정고시를 봤는데, 다행히 합격했어요. 대학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 마음인데 제 능력이 될지 모르겠어요. 지금으로선 연극영화과를 잘 준비해서 합격하는 게 목표에요.”


/김민주 itzm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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